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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훈련 멈추고 철도 착공식… ‘완전한 비핵화’는 아직 출발선

입력 | 2019-04-27 03:00:00

[위클리 리포트]‘4·27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 그 뒤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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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암호 같은 이 숫자는 지난겨울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통일정책비서관실 직원들이 맞춰 입은 점퍼 뒷면에 새겨진 숫자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 정상이 만난 날을 순서대로 적은 것이다. 2000년 6·15 정상회담, 2007년 10·4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9·19 평양 정상회담이다.

남북 정상 간 역대 세 번째 접촉이자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었던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1주년을 맞는다. 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을 때만 해도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그 기대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南北 정상, 1년 새 세 차례 만났지만…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해 4월 27일 오후 6시경,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김 위원장과 나란히 기자들 앞에 선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내용으로 공동 언론 발표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 시작된 남북 접촉이 ‘4·27 판문점 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일 오전 100분가량의 정상회담을 가진 남북 정상은 오후에 판문점 도보다리 일대를 산책하는 ‘도보다리 회담’을 갖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북 관계에 본격적인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순탄치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북-미는 정상회담 논의를 진행했고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된 거친 언사에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4일 김 위원장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지금 시점에 회담을 갖는 것이 부적절(inappropriate)하다”고 통보했다. 갑작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통보에 남북은 당황했다. 특히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며칠 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왔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통보 이후 곧바로 남북은 물밑 접촉을 시작했고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원 포인트’ 정상회담을 가졌다. 언론에 개최 사실을 사후에 통보했을 정도로 극비리에 추진됐다.

우여곡절 끝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진행됐고 70년 만에 마주 앉은 북-미 정상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력 △북한의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포로와 실종자 유해의 송환 및 수습 등 네 가지 항목에 합의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치솟았던 시점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그간 미국이 요구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북-미는 싱가포르 회담 뒤 이어진 각종 실무협상에서 실질적인 비핵화 방법과 검증 방식에 대해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했다. 사상 처음으로 남북미 정상 간 연쇄 접촉이 이뤄졌지만 비핵화 협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9월 문 대통령은 평양에서 다시 한 번 김 위원장을 만났다. 두 정상은 “미국의 상응 조치 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등 추가적 조치 용의” 등의 내용이 담긴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언뜻 보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미국의 상응 조치’라는 단서 조항이 문제였다. 북-미가 서로 “먼저 행동에 나서라”는 핑퐁 게임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결국 북-미 간 끝없는 신경전은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의 파국으로 이어졌다. 다시 만난 북-미 정상은 어떠한 합의문에도 서명하지 못했다. 지난해 4·27 정상회담으로 본격화된 비핵화 협상이 1년 동안 사실상 출발선 근처만 맴돈 셈이다.

○ 北 도발은 멈췄지만 비핵화는 아직 요원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청와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낮아졌고, 평화를 위한 대화가 본격 시작됐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내내 이어졌던 북한의 군사 도발은 중단됐다.

여기에 남북 정상은 “(지난해)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간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판문점 선언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체결했고 남북은 각각 11개의 감시초소(GP)를 철수했다.

유엔군사령부도 비무장지대(DMZ)에 마련된 ‘고성 DMZ 평화둘레길’의 민간인 통행을 승인했다. 정부는 고성 구간을 시작으로 파주 철원 등 DMZ 지역의 평화둘레길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판문점 선언의 핵심인 ‘핵 없는 한반도’는 아직까지도 요원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혔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진전은 없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빅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은 11일 시정연설에서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며 빅딜에 대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의 복구를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미사일 발사대 복구공사가 대부분 완료됐다”고 밝혔다. 자칫 상황이 4·27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비핵화 조치가 실현되지 못하면서 다른 남북 협력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에 대한 공동 조사를 마쳤지만 아직 구체적인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은 성사됐지만 평양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역시 그 시점을 가늠하기 힘든 상태다.

이런 분위기는 정부가 준비 중인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통일부는 기념행사에 북측의 참여를 요청했지만 북측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MDL을 넘은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조차 남북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북-미 정상이 지속적으로 대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올해 안에 비핵화의 구체적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태도다. 문 대통령도 11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비핵화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한 상황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측에 전달할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은 문 대통령은 곧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 김 위원장을 만날 계획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월이나 6월경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그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대화의 무대를 다시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