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거창군과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회장 이종일)는 지난해 12월 24일 신사협정을 맺었다. KIFT의 문화적 가치를 종합 평가한 뒤 거창군이 진흥회로부터 일체의 권한을 사들이는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거창군은 “지역 갈등의 합리적 해소 방안이며, 민(民)에서 관(官)으로 상표권이 이전되는 국내 최초 사례”라고 홍보했다.
당시 거창군 관계자는 “군 의회에서도 (어떤 금액이 나오든) 예산을 승인해 줄 테니 사들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감정(鑑定) 결과에 승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액의 위약금을 부담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2월 7일 거창군 평가팀 11억여 원, 진흥회 평가팀 26억3000여만 원이라는 결과를 내놓자 거창군 태도가 달라졌다. 두 금액 평균(18억여 원)을 지불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거창군은 “기초 자료가 잘못됐다. 재감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흥회는 “거창군 자료를 활용했다. 재감정은 있을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법적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행정관청이 협약을 뒤집는다면 신뢰는 어떻게 담보할까.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 관람객 산출은 어떤 자료를 토대로 할지, 산출 금액의 차이는 어떻게 보정할지를 미리 따지는 것은 기본이다. 계약 조건이나 산출 방식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책임도 거창군에 있다. 더구나 거창군은 자신들이 선정한 평가팀 금액마저도 불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재감정을 한들 그 결과를 흔쾌히 수용한다고 누가 보장할까.
그러면서도 거창군은 위약금 부담은 비켜 가려는 모습이다. ‘명시적으로 해약을 통보하지 않았고, 연극제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으므로 위약금을 물 필요가 없다’는 설명. 논리가 허술해 수긍이 어렵다.
진흥회의 독선적 운영이나 예산 집행 투명성 논란은 상당히 오래됐다. 군 의회와 공무원노조, 시민 사회의 비판과 ‘매입 반대’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번 사태의 단초는 거창군이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결자해지가 순리다. 거창군수와 부군수는 30년 이상 관료로 근무한 ‘프로’다. 그래서인지 일련의 과정이 더욱 답답해 보인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