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검찰, 살인혐의 기소 취소 “北에 이용된 희생양” 항의 통한듯… 공범 흐엉 측 “우리도 풀어줘야” 재판부, 무죄선고 요청 거부하며 “새 증거 나오면 다시 피의자 소환”
2017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독극물로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운데)가 11일(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검찰의 기소 취소로 풀려나 법원을 나서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 뉴시스
이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교외의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무하맛 이스칸다르 아맛 검사는 “아이샤에 대한 살인 혐의 기소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사건을 종결하고 아이샤를 즉시 석방했다. 아이샤 측 구이 순 셍 변호사는 “무죄 선고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거부하고 “증거가 명백한 사건이므로 추후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면 다시 피의자로 소환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호텔 마사지사였던 아이샤와 배우로 활동해 왔다고 밝힌 흐엉은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중국 마카오행 비행기 탑승 수속을 준비하던 김정남의 얼굴에 액체 화학무기인 신경작용제 ‘VX’를 손으로 묻혀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아이샤와 흐엉은 “불쾌한 냄새가 나는 물질이 얼굴에 닿은 사람의 반응을 몰래 촬영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변호인들은 “북한 보위성 소속 리재남(59) 등이 두 피고인을 속여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바르도록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사건 당시 독극물 사용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김정남을 공격하는 이들의 모습이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증거로 공개했다. 그럼에도 갑작스럽게 기소가 취소되자 현지 언론은 “흐엉마저 석방되면 ‘피해자와 증거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살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의해 적색 수배된 북한 용의자 4명은 김정남이 살해되고 몇 시간 뒤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은 “사건 당일 숨진 인물은 김정남이 아닌 북한인 ‘김철’이며 사인은 심장마비다. 북한인 4명은 그가 숨진 시점에 우연히 공항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