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과 마포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장재민 씨(35)는 올 초 마포 가게에서 제로페이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동네 상인회에서 필요한 서류를 들고 와 사인만 하면 된다고 해 손해 볼 거 없다 생각하고 결제시스템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로페이로 결제하겠다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장 씨는 “누구라도 써야 혜택을 보지, 아무도 안 쓰는데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제로페이는 애초에 없다 생각하고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영세 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추진 중인 제로페이 사업이 시작부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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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의 사용 실적이 이렇게 저조한 것은 소비자나 가맹점 모두 제로페이 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적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제로페이를 이용해 결제를 하고 싶어도 결제가 가능한 가맹점이 10곳 중 1곳도 안 된다. 또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는 카드를 업주에게 건네주면 그만이지만, 제로페이는 본인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직접 열어야 하고 나중에 결제 내용을 상호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해 번거롭다.
소득공제 혜택도 그다지 크지 않다.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사용하면 연말정산 때 신용카드보다 최대 47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연봉 5000만 원의 직장인이 소득의 절반인 2500만 원을 제로페이로만 결제해야 가능한 금액이다. 이마저도 관련법이 개정돼 소득공제 한도가 현재 연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전제가 달려있다.
소상공인의 이득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미 매출 5억 원 이하의 영세 소상공인은 우대 수수료율(체크카드 0.5∼1.0%)을 적용받고 있고, 여기에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공제한도까지 적용하면 실제 카드수수료 부담은 더 낮아진다. 가맹점들은 수수료 경감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제로페이에 큰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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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제로페이의 부진이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제로페이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개입해 시장 참여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