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미술사 최초의 입체파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모마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대표 소장품이다. 파블로 피카소가 25세 때 그린 이 그림 속엔 다섯 명의 누드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은 바르셀로나 홍등가의 창녀들이다. 오른쪽 여성들이 쓴 가면은 당시 아프리카 원시미술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반영한다. 화면 앞쪽에 있는 과일들은 ‘바니타스’, 즉 덧없음을 상징한다. 육체적 쾌락은 한순간이고 시간이 지나면 육체도 과일처럼 썩어 없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피카소는 대상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회화의 오랜 전통을 과감히 버리고,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을 한 화면 안에 조합한 완전히 새로운 예술 양식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당시엔 이해받지 못하는 너무 충격적인 그림이라 작업실 한구석에 수년간 숨겨져 있었다. 1916년 파리 ‘살롱 도톤’전에서 처음 공개된 그림은 개인 수집가 손에 넘어간 후 1937년 뉴욕에서도 전시됐다. 이 그림의 미술사적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꿰뚫어 본 건 바 관장이었다. 당시 모마의 형편으론 살 수 없는 비싼 그림이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 소장품인 에드가르 드가의 그림을 과감하게 매각하고 후원자를 설득해 마련한 재원을 보태 결국 2년 만에 모마의 소장품으로 만들었다. 젊은 미술사학자로 27세에 초대 관장이 된 바는 참신하고 유능한 관장을 원했던 모마의 설립자들이 직접 인터뷰해 뽑은 인물이었다. 뛰어난 안목과 수집의 열정, 과감한 실행력과 후원을 끌어내는 능력까지 갖춘 그는 40년 가까이 모마를 이끌다가 65세에 은퇴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