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열어 서울시내 수소충전소 설치와 유전자 분석을 통한 질병 확률 검사 등 4가지를 ‘규제 샌드박스’의 첫 대상으로 승인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기존 법령이나 제도에도 불구하고 일단 실증 테스트를 하거나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빠르게 발전하는 신기술과 신산업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처음 시도하는 포괄적 규제개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적인 ‘혁신의 실험장’이 될 것인지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렸다. 당초 이 제도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려면 법과 제도 없이는 불가능했던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벗어나, 안 되는 것만 명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게 하는 선진국형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 부처 공무원들로 구성된 심의회를 열어 하나하나 허가하는 방식인데 이래서야 혁신적 창의적 제품들이 얼마나 시장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속도도 문제다. 세계 많은 나라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신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2014년 영국이 처음 핀테크 분야에 도입한 이래 일본 등 10여 개국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17년 규제 샌드박스를 창설하고 핀테크는 물론 AI, 개인정보 서비스, 스마트시티 등으로 확대해가면서 미래 산업을 일으키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광속(光速)으로 변화하는데 몇 달에 3, 4개씩 ‘규제 프리’ 제품이 나와서야 다른 나라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겠나.
정부는 더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게 규제 샌드박스를 운용해야 한다. 우선 산업융합 시대에 부처별로 신청받는 칸막이부터 제거해야 한다. 앉아서 신청을 받는 데 그치지 말고 한국이 집중해야 할 미래 전략 산업을 콕 찍어 선제적으로 ‘규제 프리’를 선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부지런히 들어 문제점을 고치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야 규제 샌드박스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