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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필적]〈45〉대범하고 정직한 조봉암

입력 | 2019-02-08 03:00:00



서대문형무소 사형집행장의 버드나무에 진귀한 새가 나타나 슬피 우는데 이것이 ‘봉암새’ 혹은 ‘죽산조’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그 주인공인 죽산 조봉암은 광복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제헌국회의원, 초대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제2대와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모두 2위를 했고, 제3대 선거에서는 216만 표 넘게 얻었다. 그런데 1959년 7월 간첩죄로 사형이 선고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됐다.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필체를 보면 대단히 명석했을 것이다. 선생은 광복 이후 과거 몸담았던 공산주의, 즉 폭력혁명을 제창하는 ‘볼셰비즘’에서 의회민주주의를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해 나가려는 ‘민주사회주의’로 전향했다. 전후 유럽의 발전 과정은 그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큰 글씨는 대범함을 알려준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선생은 “패자가 승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의연했다. 가로선이 매우 긴 것은 강인한 인내력을 말해주는데, 선생은 어떤 경우에도 주저앉거나 좌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체를 보면 선생은 정직하고 바른 사람으로 보인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의 글씨는 주로 무질서하고 읽기 어려우며 필압이 약하고 기초선이나 기울기, 크기, 간격, 속도 등의 변화가 심하며 느리고 억지로 꾸민 듯한 형태를 가진 것이 많다. 또는 이미 쓰인 글자에 발전되거나 교정된 것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선생의 필체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으로 균형 잡힌 것을 봐도 선생은 바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징역 5년을 선고했던 1심 재판장이 2심의 사형 선고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고, 담당 대법원 판사도 “나도 죽산이 전향 이후에 있어서 공산주의자와 그 동조자가 아닌 것을 인정한다”고 한 것을 보면 사형 판결에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2011년 1월 대법원은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