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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머니를 찌른 소년, 무엇이 그를 내몰았나

입력 | 2019-02-02 03:00:00

◇사악한 소년/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김희주 옮김/464쪽·1만8000원·출판사 클




부모 살해, 패륜, 사이코패스…. 약 120년 전 영국 런던. 로버트라는 소년은 어머니를 칼로 찔렀다. 어머니의 시체는 집에 놓아둔 채 너무도 태연하게 동생과 일주일을 지냈다. 이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당시 영국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얼핏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 사건을 르포 기사처럼 생생하게 우리 앞에 되살려냈다. 우연히 본 옛날 기사에서 포착한 뒤, 과거 재판기록은 물론이고 소년의 묘비까지 찾아내는 등 끈질기게 단서들을 뒤졌다. 사건 발생일의 날씨, 일출·일몰 시간까지 계산해서 묘사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단순히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의 소행으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을 저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정신병동으로 옮겨진 소년은 치료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극심한 정서적 학대를 겪은 사실을 밝혀냈다. 13세 아동이 감내하기엔 고된 육체적 노동에도 시달려 정신적 장애도 안고 있었다.

더 극적인 사실은 따로 있다. 소년은 정신병원을 나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고 한다. 로버트가 죽은 뒤 그의 묘비에는 실제 고마움을 간직한 이가 ‘항상 그를 기억한다’고 새겨 넣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로버트가 친모를 죽인 사실 자체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잊혀진 한 소년의 끔찍한 범행. 그 속살에는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산업화를 빙자해 아동 인권을 방치했던 영국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밝혀낸 수작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