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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최악의 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충격 휩싸인 법원

입력 | 2019-01-25 03:00:00

양승태 前대법원장 구속에 술렁




“아프리카에서도 사법부 수장은 구속 안 한다.”(서울지역 A 부장판사)

“수장이 책임을 안 지면 누가 지나.”(서울지역 B 판사)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의 구속 수감 소식에 법원 내부는 하루 종일 술렁였다. 예상 밖 전직 사법부 수장의 첫 구속영장 발부를 놓고 일부 판사는 “우울하고 참담한 날”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 “최고 책임자가 책임져야”

소장 법관들을 중심으론 사법부가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자정 능력을 갖춰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B 판사는 “이미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 있는 상황에서 그 기간 최고 책임자였던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누가 지겠느냐”며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은 맞지만 법원 조직이 감내하고 가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C 판사는 “결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놔두면 더 시끄러워질 일이라 해결하고 가야 한다”며 “양 전 대법원장이 끝까지 혐의를 부인한 건 자충수였다”고 했다.

법조계 단체들은 사법부 개혁 등을 주문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우리 사법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이다. 사법부와 법조계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은 이번 일을 철저한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구속영장 발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법원은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사법농단 책임자를 처벌하고 과거의 관행과 불법적 행태와의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사필귀정”이라며 “다시는 사법농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

구속영장 발부를 비판하는 일선 법관들의 의견도 나왔다. 서울지역의 D 부장판사는 “몇몇 판사 사이에서 불구속 재판이라는 원칙이 무너진 듯하다. 검찰을 괴물로 만드는 건 법원”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역의 E 판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법부는 마지막 보루로 지켜야 하는 ‘글로벌 원칙’이 무너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이상인 고위 법관들의 반응은 강경했다. 고법 F 부장판사는 “사법부 수장을 감방에 넣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결국 정권의, 권력의 힘이 사법 독립까지 망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고법의 G 판사는 “판사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법대에 서고 재판에 매진하겠지만 사실 속마음은 매우 복잡할 것”이라며 “나조차도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한 측근은 “검찰 수사를 넘어 법원까지 스스로 사법부 수장을 구속한 건 법치주의 종언을 뜻한다. 사법부를 침범한 대한민국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라고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다음 달 12일 이전에 재판에 넘겨진다. 하지만 법원 정기인사 발표가 다음 달 1일, 인사 발령은 같은 달 25일로 예정돼 있어 어느 재판부가 사건을 맡게 될지 미지수다. “누가 이 사건을 맡고 싶겠느냐”며 사건 배당을 기피하는 기류가 강하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재판에 대비해 형사합의부를 3개 증설했는데 일부 부장판사가 당시 “(사법행정권 사건을 맡기면) 사표 쓰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예지 yeji@donga.com·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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