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심해 유인잠수정 자오룽호. [차이나 데일리]
‘해저 2만 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 발간한 책으로, 잠수함 노틸러스호와 네모 선장이 바닷속을 누비며 겪는 각종 모험을 다룬 공상과학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네모 선장의 소원은 해저도시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책 발간 후 148년이 지난 지금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서 해저의 99%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해저는 인간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닐라 해구 5000m 해저에 1800억 원 들여
해저 무인기지는 로봇 잠수정이 출동해 해양생물 탐사, 광물자원 채취 등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자체 연구실에서 분석한 후 그 결과를 지상으로 보고하는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 기지는 선박이나 해상 플랫폼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전력과 통신 등을 공급받지만, 강력한 AI 두뇌와 센서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중국 과학원은 해저 무인기지 후보지로 ‘마닐라 해구(Manila Trench)’를 검토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수심 5000m가 넘는 곳은 마닐라 해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마닐라 해구의 최저 수심은 5400m이다. 얀핀 중국 과학원 연구원은 “AI 해저기지는 바다가 충분히 깊으면서도 화산 폭발 등의 위험이 적은 곳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과학원은 해저기지 건설비로 11억 위안(약 18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이 구이저우성 첸난주 핑탕현 산림지대에 세운 지름 500m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톈옌’(天眼·하늘의 눈) 건설비의 1.5배에 달한다.
중국이 해저 탐사를 위해 무인잠수정 하이룽 11000호를 잠수시키고 있다. [중국 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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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용 잠수정 개발의 선두주자
중국의 무인잠수정 첸룽 3호. [웨이보]
2016년 중국 과학기술부는 남중국해의 수심 3000m 해저에 유인기지인 룽궁(龍宮)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50명이 최대 2개월간 머물 수 있는 가로 22m, 세로 7m, 높이 8m, 무게 250t인 기지 건설을 목표로 유인잠수정 자오룽(蛟龍)호를 이용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해저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중국은 심해용 잠수정 개발의 선두주자다. 길이 8.3m로 3명이 탑승해 최장 9시간까지 잠수가 가능한 자오룽호는 2012년 서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서 해저 7020m까지 잠수해 전 세계 유인잠수정 가운데 가장 깊은 곳을 탐사한 기록을 세웠다. 중국은 또 무인잠수정으로도 일본과 미국에 이어 1만m 이상을 탐사한 세 번째 국가다. 심해 무인잠수정 하이더우(海斗)호는 2016년 해저 1만767m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중국은 또 AI를 이용한 군사용 무인잠수정도 적극 개발 중이다. 중국이 해저기지를 건설하는 첫 국가가 될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