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檢, 공인중개사에 징역 12년 구형
‘전세 사기’로 신혼집 전세금 3억 원을 날린 고모 씨(30)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사무실에서 공인중개사 김모 씨(45·구속)가 내민 전세계약서가 가짜일 것이라고 고 씨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 씨는 주인이 월세로 내놓은 집을 세입자들에게는 전세로 둔갑시켰다. 김 씨는 집주인의 위임장을 내밀며 “계약 관련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안심시킨 뒤 전세금을 빼돌렸다. 주인에겐 김 씨가 대신 월세를 보내 범행을 숨겼다. 김 씨가 이런 수법으로 2015년 5월부터 약 2년 9개월 동안 가로챈 돈만 50여억 원. 피해자 20명은 신혼부부 등 대부분 사회초년생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진수)는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김 씨에 대해 사기와 사문서 위조 혐의로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해 어렵게 쌓은 자산을 한순간에 날린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없이 전세계약을 맺은 줄로만 알았던 피해자들은 갑자기 집을 비워 줘야 하는 신세가 됐다. 상당수가 부모 집 등 임시 거처로 옮겼고 일부는 집주인과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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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충격과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까지 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셋집을 옮기려다 김 씨에게 5억 원의 사기를 당한 여성 B 씨는 자신의 부주의를 자책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피해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 ‘억울하다’는 사연을 올렸지만 ‘본인 잘못이다’ ‘어리석어서 사기를 당한 것’ 등 싸늘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계약 전 집주인의 신원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안 당해본 사람들은 우리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의자 김 씨는 7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 변호사를 네 차례나 바꾸며 차일피일 공판을 미뤘다. 12일 결심공판에 나온 김 씨는 “내가 보유한 주식과 모친의 부동산 등을 처분해 피해자들과 합의하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공판에서도 같은 말은 했지만 실제 합의가 된 사례는 없다. 재판부는 “더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내년 1월 11일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정훈 hun@donga.com·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