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라돈이 검출됐다는 침대 매트리스가 야적장에 수북히 쌓여있다.
김대철 동아대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 등에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되면서 국민 불안과 정부 대책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혹자는 화학물질을 피해 깊은 산속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과연 ‘화학물질 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만큼 우리 주변의 화학물질은 위험한 것인가. 그 불안과 불신은 어느 정도의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최근 유해 화학물질 검출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패턴이 보이는 듯하다. 특정 제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정부 또는 언론의 발표는 ‘치명적, 발암물질’ 같은 단어와 함께 국민들에게 전달된다. 전체 맥락 없이 일부만 발췌된 전문가의 발언이나 관련 제도와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인터뷰한 내용은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다. ‘불안과 불만’이라는 사회적 여론에 정부는 부랴부랴 추가적인 조사나 대책을 내놓고 일부 전문가들은 “위험이 지나치게 부풀려 있다. 언론이 이를 부추겼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낸다. 첫인상이 사람을 평가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하듯 처음 접하게 된 뉴스에 놀란 국민들에게 안전하다거나 건강에 위해가 없다는 뒤이은 얘기는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못한다. 화학물질 검출은 ‘큰 위험’이라는 불안한 생각만 머릿속에 남는다.
WHO가 발암물질을 분류해서 제시한 것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이런 물질들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규제기관 등에서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 잘 관리하라는 것이다. 항암제는 전문의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면밀히 관찰해 투여하고 담배는 금연을 유도한다. 물질별로 노출량과 빈도 그리고 노출기간에 따라 암을 일으키는 기전 또한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 규제가 아닌 물질별로 관리가 필요하다.
각국의 규제기관들은 화학물질의 올바르고 안전한 사용을 위해 화학물질 관리를 위한 법규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환경부가 ‘화학물질관리법’을 통해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을 정하고 있다. 또 국내 시장에 진입하기 전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기업이 우선 입증하도록 해 국민 건강과 환경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도 2013년 제정했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위생법, 약사법, 화장품법 등을 통해 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식품이나 의료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활에 편의를 줄 수 있는 많은 화학물질이 앞으로도 개발될 것이다. 과거에 검출하지 못했던 미량의 화학물질도 검출해 낼 것이다. 10년 전에 검출되지 못했던 특정 유해물질이 지금은 검출됐다고 발표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유해 화학물질이 나왔다는 화두만 국민에게 무책임하게 던져서는 안 된다. 유해물질이 가진 위험의 크기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노출됐는지를 전제로 설명돼야 한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계속 사용해도 되는지, 절대 사용하면 안 되는지 아니면 일정한 양만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정확히 설명해야 국민들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유해물질의 철저한 관리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소통은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과제다. 우리 모두의 목표는 국민의 안전이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대가로 하는 불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대철 동아대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