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정치부 기자
전시장 끝에는 고 김재원 전 한글박물관장을 추모하는 ‘결어(結語) 패널’이 걸려 있었다. 김 전 관장은 지난해 12월 이번 전시를 준비하러 중국 출장을 갔다가 급성 호흡정지로 숨졌다. 패널에는 누군가가 접착테이프로 붙여놓은 꽃 한 송이가 매달려 있었다.
지난해 사드 갈등 이후 중국 박물관과의 전시 교류는 거의 끊긴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는 우리나라의 국보에 해당하는 중국 1급 문화재 등 작품 30점이 전시됐다. 국립한글박물관보다 훨씬 덩치가 큰 국립중앙박물관조차 이달 개최한 ‘대(大)고려전’에 중국 송나라 유물 대여를 추진했지만 중국 측으로부터 거부당했다.
광고 로드중
김 전 관장은 귀국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관료 출신인 그는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인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밑에서 체육정책실장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본부 실장(1급)에서 산하 기관인 한글박물관장(2급)으로 강등을 당했다.
문체부 관계자들은 “문제가 된 일은 김 전 차관 측 인사들이 주도했고, 김 전 관장은 특별히 관여한 바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본인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지만 김 전 관장은 묵묵히 새로운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패스한 정통 관료였지만, 한글박물관에 부임한 후에는 박물관이 소장한 국문학 논문과 전문서 60여 권을 석 달 만에 독파했다. 한글박물관장으로서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국정농단 사건이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적폐가 맞다. 그러나 결정 권한이 없는 실무자까지 전방위로 조사해 징계나 인사 불이익을 주는 일이 옳은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 끝까지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던 김 전 관장의 명복을 빈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