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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왕국’ 日서도 종이책 사라지고 있지만…“서점은 남을것” 왜?

입력 | 2018-11-12 17:12:00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화한 ‘바다의 뚜껑’(2015)은 숨가쁜 도시를 떠나 작은 해안마을에 내려와 빙수 가게를 차린 마리(키쿠치 아키코)의 이야기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감독이 내 소설을 읽고 그 감상을 영상으로 표현해낸 것을 확인할 때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안다미로 제공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 시즈쿠는 늘 책을 끼고 사는 중학생 소녀다. 이른 아침 전철 안에서 문고판 책에 푹 빠져 있는 수많은 ‘시즈쿠’들은 일본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 중 하나였다. 1인당 월평균 독서량이 6.1권(OECD 조사 결과)인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국가로 미국과 1,2위를 다퉈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화한 ‘바다의 뚜껑’(2015)은 숨가쁜 도시를 떠나 작은 해안마을에 내려와 빙수 가게를 차린 마리(키쿠치 아키코)의 이야기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감독이 내 소설을 읽고 그 감상을 영상으로 표현해낸 것을 확인할 때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안다미로 제공


그러나 최근 방문한 일본의 지하철에서는 종이책을 든 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시즈쿠’들의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들려 있었다. 1999년 2만2296개였던 일본의 서점 수는 2017년 반 토막(1만2526개)이 났고, 출판 시장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종이 수요는 12년째 하락 중이다. ‘출판의 왕국’은 무너지는 걸까.

도쿄의 서재에서 만난 요시모토 바나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작가들이 모바일 게임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을 많이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지운기자 easy@donga.com


●“오늘날 서점, 과거의 카페와 같다”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본명 요시모토 마호코·54)는 현대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88년 카이엔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래 젊은 세대의 고민과 아픔을 간결한 문체로 보듬는 소설을 꾸준히 내왔다. 여성 독자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요시모토 바나나 현상’이라는 용어까지 탄생했다. 2010년 네이버에서 소설 ‘그녀에 대하여’를 연재했고, 가수 겸 배우 이승기를 모델로 한 소설 ‘우리 연애할까’를 집필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영화 여섯 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데뷔작 ‘키친’은 일본과 홍콩에서 두 차례 영화화됐고, ‘티티새’ ‘아르헨티나 할머니’ ‘바다의 뚜껑’도 영화로 제작됐다. 올해도 단편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 소녀시대 수영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그의 서재에서 최근 만난 요시모토 바나나는 “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며 스마트폰이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듯이 말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더니 대뜸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유튜브의 ‘arufa’라는 채널에 접속했다. 한 익명의 청년이 온갖 기발한 실험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채널로, 한눈에도 10, 20대 취향이었다.

“요즘 제가 즐겨 보는 채널이에요. 이를 보다 관심이 생겨 지금은 운영자의 블로그도 구독하고 있지요. 유튜브 클립에도 영상만 있는 게 아니라 자막이 빼곡하게 달려요. 책 읽는 양은 줄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읽는 활자의 양은 훨씬 늘어났다고 봅니다.”

글을 담는 플랫폼이 종이책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졌을 뿐 활자 매체가 갖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건재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글이 아니라면 절대 만족할 수 없는 분야가 분명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감을 다 활용해 내용을 재구성하게 되는 활자에 비해 영상 매체에는 시각과 청각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마트폰과 전자책이 종이책을 완전히 밀어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보를 판매하는 공간’이던 서점이 ‘감성과 취향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변할 수는 있지만, 서점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서점이 하는 역할은 카페가 하던 역할과 같다고 봅니다. 30년 전에 ‘카페에 간다’고 하면 어른들은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차를 왜 나가서 마시느냐며 혼을 내곤 했거든요. 스마트폰으로도 활자를 읽을 순 있지만, 책을 집어 들고 고를 때의 설렘이나 책장을 넘길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감촉까지 재현해낼 수는 없지 않겠어요?”



츠타야 서점의 커피와 카페를 다룬 책이 꽂힌 서가 앞에 커피와 베이킹 용품이 진열돼 있다. 츠타야는 서점이라기보다 취향을 판매하는 멀티플렉스에 가깝다. 도쿄=이지운기자 easy@donga.com


●‘가장 큰 서점’ 츠타야 vs ‘가장 작은 서점’ 모리오카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요시모토 바나나가 ‘감성과 취향을 판매하는 곳’으로 가리킨 곳은 츠타야 서점이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출발해 일본을 대표하는 서점 체인이 된 츠타야는 책뿐만 아니라 생활 및 취미 용품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국의 주요 서점들도 이 곳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으로 치면 경기 성남시 분당구쯤 될 도쿄 근교 신도시인 후타고타마가와에 있는 츠타야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웬만한 백화점만큼 넓은 공간, 카페를 중심으로 사방에 서가들이 드문드문 서 있고, 사이사이 빈 공간엔 푹신한 안락의자가 놓여 있다. 요리책 서가의 바로 옆 칸엔 음식 에세이집들이 꽂혀 있고, 그 옆엔 각종 주방 도구들이 진열돼 있다. 음악 서적 옆엔 여지없이 하이엔드 음향기기들이 놓여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전통적인 서점의 관점에서 츠타야는 매우 불친절한 곳이다. ‘국내 소설’ ‘실용서적’ 등 우리에게 익숙한 책 분류 기준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작가 구스미 마사유키와의 인터뷰(2018년 11월 1일자 A22면)를 앞두고 이곳에서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일본어판을 찾아 20분을 헤맸으나 허사였다. ‘고독한…’은 후에 만화 섹션도 요리 섹션도 아닌 ‘도쿄 여행’ 섹션에서 발견됐다. 도쿄 시내 곳곳의 맛집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도쿄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할 것이란 의미였을까.


한편 도쿄 긴자에는 츠타야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별난 서점이 하나 있다. 번화가에서 조금 비껴난 호젓한 골목. 16.5㎡(약 5평) 남짓한 공간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한 종류의 책만 쌓여 있고, 벽을 빼곡히 채운 책꽂이는 없어 책방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갤러리에 가까워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서점’ 모리오카 서점이다.

츠타야가 고객이 취향을 탐색할 수 있는 놀이터라면, 모리오카는 고객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하는 소믈리에와 같다. 서점 주인 모리오카 요시유키 씨는 매주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판매할 책 한 권을 정하고, 이 책과 관련된 것들로 서점을 채운다. 여행 에세이인 경우 책 속 여행지의 사진들을 벽에 건다. 음악책인 경우 해당 음악을 매장에 틀어둔다. 저자와 독자들을 초청해 북 토크를 열기도 한다.

저자와 독자, 서점 주인과 독자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 이뤄지는 곳이다. 모리오카 서점은 ‘가장 작은 하나의 서점’이자 ‘가장 큰 한 권의 책’이기도 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시대가 바뀌고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어도,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읽는 독자가 있다면 모든 콘텐츠의 근본인 활자의 입지는 굳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지운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