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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8년차 경제부 기자가 민족문제에 눈뜬 계기는?

입력 | 2018-11-12 10:00:00



제가 민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였습니다. 박정희 정권 마지막 무렵인 당시엔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런 저런 기회에 아이들은 함께 그것을 복창했습니다. 1968년 2월 박 대통령이 반포한 이 헌장을 잘 외우는지는 성적표의 생활태도 등에 크게 반영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단어를 안다는 것과 민족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특히 그 민족의 반쪽인 북한의 의미는 더욱 그랬습니다.

고교 2학년 시절인 1987년 겨울 저는 성경과목(미션스쿨) 시험 시간에 생경한 문제 하나를 받았습니다.

“남북한(민족)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쓰시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반항심의 발로였는지, 철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저는 처음으로 ‘민족의 반쪽’인 북한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답안지에 이런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민족)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이 서로를 아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한 뒤에 통일을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대학의 정치학과에 입학해 졸업하고 대학원을 수료한 뒤에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지만 민족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느끼기 까지는 입사 후 7년 후 경제부 기자일 당시였습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에서 2차 연평해전이 터지던 바로 그 시각. 저는 난생 처음으로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5년 전 법조기자시절, 필리핀 출장길에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이일하 목사가 봉사하고 있던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 이웃사랑회(현 굿네이버스)의 회원 자격을 얻어서였습니다.

3박4일 체류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금단의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딜 때가 그랬고, 북측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운영하는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 그랬습니다. 함께 간 실향민 어르신들이 북측 백두산 장군봉 위에서 흐느끼는 것을 보면서, 묘향산을 오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남루한 북한 시골모습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북한과 너무도 다른 번영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새삼 감격하면서도.

요컨대 당시 방북 체험은 저에게 분단과 전쟁, 남북대결과 체제경쟁, 전혀 다른 길을 간 같은 두 민족의 현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배우고 강의를 듣고, 신문과 방송을 보아서 북한, 갈라진 민족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의 오만이요 무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깨달음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아 북쪽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말과 문화를 공유하는 한 민족이구나. 그러나 1945년 국제정치에 의해 갈라진 뒤 당시까지 57년 동안 다른 체제로 살아온 나머지 지금은 정치 경제적으로 너무나 달라졌구나. 당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대화의 시대였고, 저는 북한의 문제가 머지않아 남한의 문제가 되고, 나뿐만이 아니라 내 아이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후 북한대학원 석사과정부터 북한을 다시 공부하면서 북한 취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16년이 흘렀습니다.

류태림 씨의 짧은 질문에 이렇게 장황한 개인사를 털어놓는 것은 태림 씨의 지금 생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분단된 민족의 경험을 젊은이들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는 책도, 강의도 아닌 자기만의 어떤 특별한 경험에 의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라기보다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태림 씨의 지적처럼 다문화 세상이 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한민족 단일주의 이념은 서서히 희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한민족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는 ‘닫힌 민족주의’가 아니라 갈라져 상이성이 커진 한민족과 한반도에 터전을 잡은 다문화 주민들에 세계로 퍼져나간 재외동포들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분단과 전쟁, 남북한 체제경쟁의 과거를 경험하는 부모님 세대가 사회의 주류에서 물러나고 세상을 떠나고, 과거에 대해 경험과 감정이 없는 자녀들이 사회와 역사의 전면에 나서면서 과거와 같은 민족주의 개념은 크게 변화할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945년까지 한반도에 살면서 역사와 문화, 체제와 언어를 공유했던 한민족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과거이고 북한 핵문제나 인권문제에서 보듯이 그 과거는 지금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쉽게 생각하면 회초리를 들고 원칙을 가르치자는 것이 보수의 것이요, 껴안고 설득하자는 것이 진보의 것일진데, 모두 북한을 민족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과 통일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해 오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비록 부담스럽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갈라진 민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뛰어들어요. 특히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에요.”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