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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겼던 경복궁 영추문 다시 열린다

입력 | 2018-10-04 03:00:00

세종대왕 탄생 서촌과 연결통로
2014년 이후 빗장… 관람객 불편
한글날 행사 위해 7일 일시 개방… 안전 보강후 11월중 시민에 활짝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은 경복궁 ‘영추문(迎秋門)’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문화재청은 3일 “그동안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의 통행이 제한돼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며 “인력 배치와 소방, 전기 시설 등의 실무 작업을 마무리한 후 11월부터 시민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전면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본격적인 영추문 개방에 앞서, 9일 한글날 제572돌을 기념해 7일 한시적으로 먼저 빗장을 푼다. 세계문자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의 폐막식 행사로 이날 오전 11시부터 문을 연다.

영추문은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다. 세종은 1397년 현재 종로구 통인동 근처인 준수방(俊秀坊)에서 탄생했다. 준수방은 영추문 맞은편 의통방(義通坊·현재 통의동 일대)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이다. 또 집권 뒤엔 영추문에서 가까운 경회루 남쪽 집현전(현 수정전)을 설치해 훈민정음 창제를 지휘했다.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는 “영추문은 세종의 탄생과 훈민정음 반포의 역사가 교차하는 뜻깊은 장소”라며 “이러한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경복궁이 조선 법궁(法宮)을 넘어 한글 탄생의 산실임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1536∼1594)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도 영추문을 언급한다. “연추문(延秋門·영추문의 옛 이름)으로 달려 들어가 경회루 남문 바라보며 임금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영추문은 임진왜란 전까지 관료들이 왕궁을 드나들던 주요 출입구였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아픈 역사와도 이어진다. 당시 고종이 가마에 숨어 궐을 빠져나갔던 통로가 영추문이었다.

그간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은 영추문이 닫혀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았다. 경복궁은 현재 남쪽 광화문(光化門), 동쪽 국립민속박물관과 주차장 연결통로, 북쪽 신무문(神武門)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추문이 폐쇄돼 서촌 쪽에서 경복궁으로 들어가려면 국립고궁박물관 출입구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2011년 바깥으로 일방통행을 허용했으나 이마저도 관리가 어려워 2014년 중단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는 양방향 출입이 모두 가능한 전면 개방으로 진행해 시민들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전각(殿閣)들을 헐어낼 때 무너졌다가 1975년 원형대로 복원했다. 광화문만큼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겹처마 구조와 지붕 위 취두(鷲頭), 용두(龍頭), 잡상(雜像) 등이 얹혀져 있어 소담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