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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미소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국가 보물된다

입력 | 2018-10-02 10:12:00


신라시대 수막새 얼굴의 미소가 국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대형 불화인 괘불도를 포함해 고려 시대 금속공예품, 조선 시대 고문서 등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는 일제시기 경주 영묘사 터였던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수막새(圓瓦當)다. 1934년 다나카 도시노부라는 일본인 의사가 경주의 골동상점에서 구입한 뒤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고 박일훈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돌아온 환수문화재다.

와당 제작틀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은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으로,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전체적인 형상을 만든 후 도구를 써서 세부 표현을 마무리했다. 왼쪽 하단 일부가 없지만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룬 자연스런 모습이 숙련된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삼국 시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들의 염원과 인간적 모습을 구현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신라의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이번 지정 예고에는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에 소장된 대형 불화의 보존관리를 위해 정밀조사 사업을 하면서 문화재적 가치를 새롭게 발굴한 괘불도 3건을 포함했다.



‘군위 법주사 괘불도(軍威 法住寺 掛佛圖)’는 1714년 5월 수화승 두초 등 화승 9명이 참여하여 완성한 괘불이다. 비단 16폭을 이었고 높이 10m에 달하는 장대한 크기다. 거대한 화면에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좌우로 벌려 연꽃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여래를 화면 중간에 큼직하게 그렸다.

부처임에도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한 보살의 모습으로 구현한 점, 하단에 용왕과 용녀를 협시보살처럼 배치한 점 등 다른 불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화면 구성 시도가 주목된다.

담채 기법의 색감과 세밀하고 정교한 필선, 다양한 문양이 어우러져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 연꽃을 들고 있는 주존불의 모습은 조선 후기 불화의 새로운 도상 연구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禮山 大蓮寺 毘盧遮那佛 掛佛圖)’는 1750년 축명, 사혜 등 화승 4명이 조성했다. 구도는 세로로 긴 화면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배치하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상하로 그려 오존(五尊) 형식을 취했다.

일목요연한 구도와 날씬하고 비례가 적당한 인체표현, 붉은색, 하늘색, 분홍색 등 밝고 부드러운 색채 사용은 18세기 전반 충청도 불화 양식을 계승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이전 조성된 비로자나불 불화는 남아있는 예가 거의 없다. 현존하는 작품은 주로 석가모니불, 노사나불과 함께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이 괘불도는 유례가 드문 오존으로 구성된 작품이자 18세기 중엽 충청도 괘불 제작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尙州 南長寺 靈山會 掛佛圖)’는 야외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에 사용된 불화다. 1788년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인 상겸의 주도로 화승 22명이 참여하여 완성했다.

높이 10m가 넘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본존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주위에 권속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고 밝고 짙은 채색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명료하고 능숙한 필선으로 대상을 표현해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줘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대표 불화 중 하나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경선사 명 청동북(景禪寺 銘 金鼓)’은 사찰의 일상적 불교 의례에서 사용된 불교의식구 종류인 청동북이다. 옆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무인년인 1218년 무관 6명이 발원해 경선사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표면에는 굵고 가는 동심원 4개를 둘렀고 중앙에는 연꽃 씨를 표현했다. 그 주위를 연화문 16개를 돌려가며 장식해 화려하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췄다. 고려시대 청동북 중에서도 아래에 공명구가 뚫려 있는 사례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이다.

지금까지 고려 청동북은 뒷면이 뚫려 있는 반자형(飯子形)이 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옆면에 공명구가 마련된 이 청동북은 13세기 청동북 중 기년명이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자 독특한 제작기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 금속공예품 연구에도 의미가 크다.


‘장철 정사공신녹권(張哲 定社功臣錄券)’은 1398년 11월 공신도감에서 제1차 왕자의 난(1398)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정사공신 29명 중 한 명인 중추원부사 장철(1359∼1399)에게 발급된 녹권(錄券)이다.

이 녹권에는 공신호와 성명, 국왕의 명령으로 공신책봉을 하게 된 목적과 경위, 공신들의 공로와 관직, 그리고 공신의 포상, 이와 관련된 녹권의 발급 사실, 시행 일자 등이 순서대로 기록됐다. 한자어의 순우리말 표기인 이두가 많이 사용됐고 문서의 서식 또한 조선 초기 공신녹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고문서 연구에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조선 초기 정사공신녹권이자 역사·국어·서지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자료다.

문화재청은 이들 6건에 대해 30일간 예고기간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