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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성적? 그래봤자 서울에 집 한 채면 끝”…추석대화도 기승전-부동산

입력 | 2018-09-26 17:16:00

동아일보 DB


“니(네)가 산 아파트가 서울 어데(어디에) 있다 캤노(그랬니)?”

24일 차례를 지내기 위해 경북 경주의 큰아버지 댁을 찾아간 직장인 정모 씨(40)는 하루 종일 친척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서울에 사는 정 씨는 ‘일시적 2주택자’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전용면적 80㎡ 정도 아파트에 사는 그는 지난해 2월 아들(5)의 초등학교 입학에 대비해 전세를 끼고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한 채를 샀다. 아직 차익을 실현할 생각은 없지만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두 아파트를 합친 평가이익은 4억, 5억 원 수준이다. 정 씨는 26일 “만나는 친척마다 ‘집값이 얼마 올랐느냐’고 물어보는 통에 추석 음식이 체할 지경”이라며 “대충 얼버무리면 인터넷으로 가격 검색을 해볼 테니 아파트 이름을 알려 달라는 사촌 형님도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친척들이 모인 이번 추석 차례상에서는 단연 ‘집값’이 화제에 올랐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 “학교 성적은 잘 나왔니” 같은 명절의 단골 스트레스성 질문도 결국 “그래 봤자 서울에 집 한 채 가지면 끝”이란 말로 마무리됐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결국 부동산 문제로 귀결되는 ‘기-승-전-부동산’ 현상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것이다.

경남 통영 고향집에서 추석을 쇤 미혼 직장인 이모 씨(39·여)는 올해 부모와 함께 청약 전략을 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언제 시집갈 거냐”란 얘기가 오갔지만 올해는 ‘똘똘한 한 채’를 사는 데 화제가 집중됐다. 이 씨는 “고향에 계신 엄마까지 ‘내가 지금 서울로 전입신고를 하면 2년 후 청약이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했다”며 추석 부동산 민심을 전했다.

집값 상승에 가장 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무주택자들이다. 대기업 해외 주재원으로 있다가 2014년 서울로 돌아온 윤모 씨(46)는 당시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반전세로 입주했다. 집값 동향을 살피느라 일단 임대로 들어간 것. 하지만 전세계약을 두 번 연장하는 동안 15억 원이던 이 집(전용 127㎡)의 매매가는 30억 원 가까이로 뛰었다. 윤 씨는 안부를 묻는 친척들에게 “집 안 산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전세금까지 올라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2년 전 결혼하면서 대구 수성구 황금동 전용 84㎡ 아파트에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한 김모 씨(34·여) 역시 “집값이 1억 원 넘게 오르자 집 주인이 보증금을 그만큼 올려달라고 해 대구 동구의 아파트를 전세금과 비슷한 가격대에 사기로 했다”며 “2년 전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황금동 집을 못산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번 집값 상승이 서울 등 수도권과 대구, 광주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되면서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는 소외된 지역의 ‘유주택 가정’도 적지 않았다. ‘광주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광주 남구 봉선동이 대표적이다. 지역 부동산 등에 따르면 봉선동의 한 아파트(129.6㎡)는 최근 7개월 만에 5억 원가량 올랐다. 연휴 때 고향 광주를 찾은 조모 씨(73)는 “봉선동 제일풍경채엘리트파크 전용 84㎡가 최근 9억 원에 나왔다. 10년 전 광주 집을 팔고 경기도로 이사할 때만 해도 ‘재테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아도 광주 집을 못 사겠다”고 푸념했다.

부산·경남에서는 집값 하락에 따른 불안감이 컸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 사는 정모 씨(46·여)는 “지난해 8월 이후 부산 집값이 쭉 내리막”이라며 “지금 사는 집(전용 58㎡ 아파트)의 시세가 3억 원 정도인데, 작년 8월 최고점 대비 6000만 원 정도 내렸다”고 했다.

공기업 퇴직을 앞두고 있는 경남 마산의 나모 씨(59)는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러 내려온 사촌 동생에게 대뜸 “서울 집값이 올라 너는 좋겠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에 있는 큰딸을 아파트 한 채 달려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꾼다”며 혀를 찼다. 사촌동생은 “재산세가 올해 50만 원 가까이 올라 나도 힘들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나 씨 등의 핀잔만 들었다.

집값 급등 지역에서는 추석 연휴를 맞아 ‘재산 분할 약속’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서울의 직장인 강모 씨(33)는 지난해 결혼하면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중대형 아파트를 약 10억 원에 사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당시 부모가 살던 서울 동작구 대방동 전용 84㎡짜리 아파트를 8억 원에 팔고, 강 씨 부부가 대출받은 2억 원을 합친 것이다. 그는 이번 추석에 부모와 ‘집을 팔게 되면 양도가액을 집값 기여 비율인 8 대 2 비율로 나눌 것’이라고 합의했다. 강 씨 부모가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지금 미리 약속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부모 자식 간이라도 얼굴을 붉힐 수 있다”고 먼저 제안한 것을 따른 것이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