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가짜뉴스 미디어들’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주요 언론들이다. 그는 이들 언론을 ‘국민의 적(enemy of the people)’이라고 부른다.
트럼프는 오랜 세월동안 미 국민 상당수의 신뢰를 받아온 주류 언론들을 공격하는 게 자신의 정치적 이득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한다. 자신의 지지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미래, 즉 리버럴 진보주의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 상황에 기여할 수 있는 이들 언론들을 매도함으로써 지지자들에게 대리배설 같은 쾌감을 준다. 상대를 도덕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적과 내 편을 확실히 나눠서 지지를 다지는 이런 전략은 좌건 우건 극단에 서있는 정치인들이 흔히 구사한다.
상대를 도덕성의 차원에서 경멸하기 시작하면, 상대의 비판은 더 이상 비판이 아니라 음모로 들리게 된다. 친노 계보라는 이해찬 의원이 최근 “수구 세력이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위기설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경제 현장의 실태를 전하는 소리를 수구 세력이 조장하는 음모로 보는 시각의 반영이다. 정치학자들은 자신 스스로 매사를 전략적·공작적 차원에서 기획하고 전술을 짜서 대처해온 정치인들이 주로 그런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타인의 비판을 비도덕적 동기가 깔린 것으로 여기는 태도의 바탕에는 ‘자기 객관화 능력 결핍증’이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에, 자신이 이뤄낸 ‘너무도 훌륭한 결과물’이 비판받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음모론으로 해석해버린다. 음모라 여기면 비판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여권의 터줏대감들이 보수를 진보의 상대 개념이 아니라 궤멸 대상, 친일파 후손, 재벌 협력자 등으로 인식하는 것도 그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자유한국당 일부 ‘올드보이들’이 집권세력을 종북 주사파라고 주장하는 것과 닮은꼴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보수 청산으로 치달으려는 경향성도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물론 구시대 잔재의 청산은 필요하다. 광복 직후에는 친일파 청산이, 민주화 후에는 군부독재 청산이 철저히 이뤄졌어야 했다. 친일파 청산을 광복직후 제대로 못한 채 50년도 넘게 지난 뒤에 특정 이념세력이 주도하겠다고 나서다 보니,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직후에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민족지도자들이 정작 그 시대를 경험해 보지도 않았던 이들에 의해 친일파로 몰리는 왜곡이 빚어진다.
역사적으로 가치의 상대성·다양성을 외면한 채, 유아독존 절대선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했던 정치세력의 수명은 총칼에 의존하지 않는 한 길지 못했다. 운 좋게 상대의 실수나 자멸에 편승해 승자의 위치에 올라도 반짝으로 그친다. 트럼프는 앞으로 7년 더 백악관에 있는다고 은근슬쩍 장담했지만 증오를 부추겨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그런 정치는 미국이든 어디든 미래가 없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