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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정성은]친구가 잠든 봉안당에 다녀오다

입력 | 2018-06-20 03:00:00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친구의 기일을 맞아 인천가족공원에 갔다. ‘가족’과 ‘공원’이 합쳐지면 ‘추모시설’의 다른 이름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장례식엔 가 보았지만, 그곳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벽면 가득 투명한 서랍 속엔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액자 속 사진과,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이 있었다. 친구가 있는 쪽에 도착하자 누군가 와 있었다. 친구 옆 칸 고인의 가족이었다.

고인은 할아버지였다. 부인과 아들, 며느리 손녀까지 할아버지를 보러 왔다. 아들은 관계자에게 서랍을 열어 달라고 한 뒤 유골함을 꺼내 정성스레 닦았다. 그냥 물티슈도 아닌, 빨래에 넣는 향기 나는 물티슈로 닦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할아버지의 생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말했다. ‘여기 젊은 아가씨가 있네….’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29년생, 내 친구는 92년생. 같은 날 임종한 두 사람은 나란히 안치돼 있었다. ‘아, 저희가 친구들이에요!’ 가족들은 자리를 비켜주었고, 우리는 친구와 인사했다. 하지만 친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곳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닥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유골함과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1층엔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선글라스를 끼고 오셨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안부를 묻다가 누가 새로 사귄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네 살 연하라는 말에 어머니는 “우리 승연이가 들으면 ‘어머 징그럽다’ 했겠다 얘∼”라고 말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는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에겐 모든 것이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로 수렴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와 관련된 기억들을 최대한 많이 꺼내 보기로 했다. 그러다 그만 친구가 야한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것까지 말하고 말았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울다 웃었다.

친구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뇌종양은 초기 증세가 없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너를 살려주겠노라 약속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맞았다는 주사도 맞았고, 지리산의 자연 요법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의사 선생님도 할 수 있는 게 없대….’ 친구는 엄마를 위로하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생각해 보니 친구는 한 번도 우리에게 하소연한 적이 없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늘 너무 씩씩해서 갈 때마다 되레 우리가 그의 아파 보이는 모습에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아주 가끔 ‘그런데 엄마! 조금은 억울하다ㅠㅋㅋ’라고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마음이 아렸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쥐여주셨다.

그 친구의 블로그 글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세상이 저한테 아주 강한 펀치를 날렸는데 저는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이 펀치가 제가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되는 펀치임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주시니까요. 그리고 그 시련으로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단,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하실 것.’

승연이의 용기를 기억하며 나도 용기를 내본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