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야구 팬 커뮤니티에 올랐던 국내 한 프로야구 팀 선수들이 ‘원산폭격’이라고 부르는 얼차려를 받는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화면 캡처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10여 년 전 남자 대학농구 우승팀 선수의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필자는 당시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창 시절 단체 기합의 끔찍한 기억이 뭉툭해져 추억으로 변한 중장년층 대부분이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빙상경기연맹 특정감사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쇼트트랙 남자 코치(조재범)가 여자 선수(심석희)를 밀폐된 공간에서 발과 주먹으로 수십 차례 때렸는데, 그 이유가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단다. 엘리트 스포츠계의 구타가 이토록 심각한 줄은 몰랐다. 그동안 태극전사들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낸 뒤 흘린 것이 ‘피눈물’이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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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구타 피해 사건’과 고교 재학 시절 후배들을 집단 폭행한 프로야구 넥센 신인 투수 안우진(19)이 대표적인 예다. 만약 스포츠계에서 ‘구타 미투(#MeToo·나도 구타당했다)’가 본격적으로 촉발된다면 어찌 될까. 피의자와 피해자가 조사를 받기 위해 줄소환되면 정상적인 대회 진행이나 리그 운영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 교수는 “구타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선수나 후배를 이끄는 방법을 알지 못해 추악한 구타가 대물림되고 있다. 각 협회나 연맹이 지도자 교육 등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면 체계적인 훈련과 풍부한 실전 경험, 간절함 등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한다.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구타는 필요악’이라는 인식은 어불성설이다. 이유 불문하고 폭력은 그 자체가 범죄다.
그런데 간절함은 선수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조금 생뚱맞을지 몰라도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 대표팀 1.5군의 간절함을 예로 들어보자. F조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독일은 마지막 세 번째 경기에서 맞대결을 벌인다. 혹자는 독일이 앞선 두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면 한국과의 경기에는 주전 선수 부상 방지를 위해 1.5군을 대거 출전시킬 테니 한국팀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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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대부분이 승자 독식이다. 특히 스포츠는 그렇다. 스포트라이트는 승자의 몫이다. ‘아름다운 꼴찌’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난 수영이 좋은데 꼭 1등만 해야 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 ‘4등’에서 열두 살 수영선수 준호가 한 말이다. 훈련 중 구타를 일삼는 코치, 이를 눈감는 부모의 모습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잠깐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내 사그라졌다.
그런데 ‘심석희 사건’ 등을 계기로 국민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방법이 정당했고 과정이 공정했는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는 매 맞으면서 획득한 메달을 마냥 기뻐할 국민은 없을 듯하다. ‘묻지 마 메달’은 더 이상 선수는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기쁨이 될 수 없다.
칼럼 한두 편으로, 캠페인 몇 번으로 구타의 악순환이 단숨에 끊어지길 기대할 수는 없다. 개발독재 산업화시대에서 비롯된 성과 지상주의는 스포츠계도 그 뿌리가 깊다. 게다가 스포츠계의 상명하복은 어느 분야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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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뻐도 눈물이 난다. 훗날 국제대회 시상대에 오른 태극전사가 만약 눈물을 흘린다면 그 이유는 오로지 ‘기뻐서’였으면 좋겠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