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진 소설가
이 따돌림과 외면은 모두 직장 생활의 이름으로 이뤄진 것이다. 대한항공, 유명 로펌이라는 간판을 내려놓은 개인으로서의 그들은 박 씨가 불합리한 사유로 고초를 겪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여러 현안에 비판적이고 곧은 목소리를 개진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테다. 하지만 자신의 생계와 커리어가 걸린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그들은 좀체 그런 마음을 내비치지 못한다. 침묵하고 외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때로는 조직의 기강을 해치고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도리어 비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우리 글쟁이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세상만사에 참견하기를 즐기는 작가가 막상 자기 분야에서 추문이 일면 입을 닫는다든가, 작품의 비평을 청탁받은 평론가가 기획사나 매체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려고 실제 감상보다 우호적으로 쓴다든가, 여론을 선도하는 칼럼니스트가 매체의 정치 성향에 맞춰 주제와 소재를 고른다든가 하는 건 딱히 새삼스러울 것 없는 풍경이다. 어쩌면 온전한 프리랜서는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 직원 500여 명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보통 사람들의 반란이다. 한데 가면을 썼다. 현실의 직장 생활을 고려해 스스로를 지키며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의미를 유추하면 ‘직장 생활이 다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들에게 피해가 없길 바란다.
홍형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