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오늘과 내일/이진영]도보다리 밀담, ‘입 모양’으로 상상해보면

입력 | 2018-05-04 03:00:00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데, 그날 ‘도보다리 밀담’을 들은 이는 정말 새 말고는 없다. 언론은 대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 모양’ 판독에 바쁘다. 대화시간 30분 중 그의 얼굴이 정면으로 카메라에 잡힌 건 4분. 채널A의 의뢰를 받은 독순술(讀脣術) 전문가들은 입 모양에서 “핵 같은 것을 이참에” “트럼프께서” “관광사업별로 뭔가를 짓고 싶어서” “아버지가 저 여자와 결혼하라고”를 읽어냈다. 이를 뼈대로 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관한 책 ‘화염과 분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의 신동아 4월호 기고문으로 살을 붙여 4·27 남북 정상 간의 밀담을 상상했다.

▽김 위원장=트럼프께서 나를 ‘개방적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로켓맨’이라 할 때는 언제고…. 북-미 정상회담도 하자 없게 하고 싶다. 데니스 로드먼이 트럼프가 쓴 ‘거래의 기술’을 줘서 읽어봤는데 잘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독특한 인물이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즐겨 먹는 이유가 독살당할 걱정이 없어서란다. 그래도 그 파격적인 스타일 덕에 한반도 상황이 극적으로 바뀐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그는 ‘2분남(two-minute man)’이다. 미 정보기관이 올리는 대통령 보고서는 60쪽 분량인데 그에겐 5쪽을 넘기지 않는다. 숫자나 글자보다 큰 그림을 활용하라. 지난해 4월 시리아 공습 때도 꿈쩍 않다가 큰딸 이방카가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아이들의 처참한 사진을 보여주자 놀라며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를 명령했다고 한다.

▽김
=길고 복잡하게 얘기하면 안 되갔구나.

▽문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아니면 진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사람이다.

▽김
=미국이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 5월에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해 북부 실험장 폐쇄과정을 공개하겠다.

▽문=위원장은 최근 노동당 중앙위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며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공표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담은 책자와 USB메모리를 준비했으니 가져가시라.

▽김=아버지의 핵전략은 파키스탄 모델이었지만 난 베트남을 보고 있다. 베트남은 1980년대 ‘도이머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고,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동남아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다. 우리 조선에 중국은…. 92년 한중수교 때 중국에 배신감을 느꼈다. 90년대 말 100만 명이 굶어죽을 때 중국이 도와준 게 있나. 게다가 장성택이를 내세워 친중 정권을 도모하고.

▽문=중국에선 리설주 여사가 송혜교만큼 인기가 많다고 한다.

▽김=아버지가 별세하기 3년 전인 2009년 나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나이 어린데 가정까지 없으면 내세우기 뭣하다고 빨리 찾아내라 하더니, 저 여자와 결혼하라 하셨다. 세습을 생각하셨다면 스위스로 유학 보내지 않고 당이나 군대에서 후계자 훈련시키고 결혼도 일찌감치 시켰을 텐데,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었다면 피 볼 일도 없었을 텐데….

▽문=난 친화력이 있는 아내 덕을 많이 본다. 위원장도 그럴 것 같다.

▽김
=서양에선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세손빈 흉내 내는 거냐 하던데, 명품 핸드백과 옷을 너무 많이 산다. (정상국가처럼) 잘 연출됐다니 그만 사라 하면 안 되갔구나.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