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멜로 장르로 보이지만 연인 관계보단 한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속 경유의 처지는 초라하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었지만 펜을 놓아버린 지 오래. 밤에 대리운전을 하며 근근이 산다. 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했던가. 동거하던 여자친구는 말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다.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여자친구가 한 달 전 해고됐다는 사실, 월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에게 남몰래 사정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며 더욱 비참해한다.
한겨울에 갈 곳 없어진 그는 하나뿐인 친구 집으로 가지만 역시 환영받지 못하고,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다 옛 애인 유정(고현정)을 만나기까지 한다. 소설가로 먼저 등단한 유정을 마주한 그는 어색한 안부를 나누고 헤어지지만, 유정으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며 다시 흔들린다.
이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10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년) 등에서 조감독과 조연출을 맡았다. 시종일관 술에 찌든 주인공, 어쩐지 모호한 주제의식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 군데군데 홍 감독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도 흥미롭다.
비참함 속에서도 다시 펜을 들며 나름대로 희망을 찾아보는 경유를 보여준 이진욱의 연기에 눈길이 간다. 성 추문에 휘말렸던 시기에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일까. 지나치게 비참해 때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영화 속 상황을 현실감 있게 소화해 냈다. 12일 개봉. ★★★(★ 5개 만점)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