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내무총장이던 도산 안창호(1878∼1938·사진)는 1919년 9월 29일 중국 상하이 하비로 청사를 찾아온 강원 고성 사람 이병상에게 금반지와 금은 장신구를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병상은 먼 친척인 고성의 부자 이완수가 ‘임정의 모습을 대신 살펴봐 달라’고 부탁해 온 길이었다. 임정은 국내 인사들을 상하이에 데려와 하비로 청사를 둘러보게 한 뒤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광재 연구관은 “안창호는 이 말을 하며 조선인의 애국심에 감동해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한다”며 “하비로 청사는 1919년 6월 내무총장에 취임한 안창호가 미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세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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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관은 “임정 수립 준비 기관이었던 독립임시사무소가 하비로 329호에 있었다”며 “하비로 청사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등의 혁명가들과 제휴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인 장소였다”고 말했다. 임정은 하비로 청사에서 국내 행정 장악을 시도하는 한편 외교, 군사,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했다.
하비로 청사에서 통합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정 직원들은 독립의 희망에 가득 찼다. ‘첨구자(尖口子)’라는 필명의 독립신문 기자는 매일 30여 명의 직원이 출근해 점심 먹을 새도 없이 바삐 일했다고 썼다. 현순 목사는 임정 직원들이 오전 9시에 출근해 ‘집합실’에 모여 애국가(무궁화가)를 부르고 총리의 말(告諭·고유)을 들은 뒤 각자의 사무실로 가서 근무하는 모습이 “일대수양소(一大修養所)와 흡사했다”고 회고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