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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훈상]배현진이 반대 질문을 받았더라면

입력 | 2018-03-22 03:00:00


박훈상 정치부 기자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는 요즘 단기속성 정치 과외를 받고 있다. 이번 달에만 7일 MBC 사표, 9일 자유한국당 입당, 16일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 선출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6·1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야 하니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과외 교사는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이른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정치 신인을 키운다. 김 원내대표는 “화려한 조명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방송인의 물을 빼고 있다. 스파르타식 수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 위원장을 위한 비밀 교재도 준비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수칙, 홍보, 당협 운영방법 등이 A4용지 10장 분량에 요약돼 있다. ‘구전 홍보단’을 꾸려 자신을 띄우고, 상대 후보를 아프게 비판하는 법까지 3선 의원의 현실 정치 비법이 녹아 있다.

이 중 ‘정치적-전략적 행동수칙’은 모두 10가지다. 단순하게 말하고 행동하라, 메시지를 반복하라, 존재감을 드러내라, 어떠한 이슈도 회피하지 마라, 반대를 즐겨라, 상대를 규정하라, 대중의 말로 대중에게 말하라, 상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자기 방식으로 싸워라, 사람의 이야기를 하라 등이다.

가장 먼저 ‘반대를 즐겨라’는 조언이 눈에 띈다. “뛰어난 정치인은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입당식 현장을 이 수칙과 한번 비교해 보자. 한 기자가 “송파을과 연고가 있는지, 현역에 있을 때부터 정치권에 입문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배 위원장은 “(송파을 전략 공천은) 결정된 사실이 아닌 게 팩트다. 방송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과 이 나라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을 바로 세우는 데 헌신하겠다”고 답했다. 흡족한 설명은 아니었다.

다음 질문자로 MBC 기자가 나섰다. 그러자 홍준표 대표는 “반대 당사자니까 됐어”라고 잘랐다. 홍 대표가 자리를 뜨자 배 위원장도 당직자의 안내를 받아 따라 나갔다. 순간 장내는 기자들의 항의로 아수라장이 됐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정리에 나섰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교재대로라면 “실패하는 정치인은 반대를 두려워한다”. 한국당 정치 선배들부터 교재대로 실천했어야 했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라’는 조언도 빠져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는 거의 유일하게, 대중이 가장 쉽게 감동하는 소재의 하나다.” 배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자유’라는 가치가 파탄에 놓인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 우려를 느꼈다”고 정치 입문 계기를 밝혔다.

사람 냄새 나는 대목이 없었다. 솔직한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질의응답 시간을 생략했으니 사람 배현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준비된 원고만 읽는 아나운서 배현진만 어색하게 앉았다. 여왕 이미지를 지워 줄 대학 시절 면접용 구두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방송사 시험을 보던 경험을 털어놓을 기회도 놓쳤다. 배 위원장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산 구두가 닳을까 아까워 쉽게 신지도 못했다고 했다.


‘죽은 물고기만이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배 위원장이 2012년 MBC 아나운서 달력 표지 모델로 나섰을 때 직접 고른 문구다. 배 위원장은 기자에게 “노력은 보답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돌파한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했다. 보수를 향한 국민적 지지와 신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 그 물길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갈지 걱정이다. 정치인의 말은 ‘암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박훈상 정치부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