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獨 연구팀, 동굴벽화 연대 판명
영국과 독일, 스페인 공동 연구팀의 이번 연구 결과로 6만4000년 전 그림으로 밝혀진 스페인 동굴의 그림. 달 월(月) 모양의 도형과 동물 형상, 기하학적 무늬가 보인다. 염료를 이용한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벽화다.
앨리스터 파이크 영국 사우샘프턴대 고고학과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스페인 이사벨Ⅰ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스페인 남부 및 서부 동굴 세 곳 내부에 그려진 구석기 시대 벽화에서 탄산염 시료 60여 개를 채취한 뒤, 우라늄(U)-토륨(Th)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이용해 연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3일자에 발표됐다.
동굴에는 붉은색과 검은색 염료로 동물 모습과 기하학 문양, 손도장 등이 여럿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도 스케치와 채색부터 판을 조각해 염료를 묻혀 찍어내는 판화 기법, 틀을 대고 그리는 스텐실 기법 등 다양하다.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벽화는 현생인류 이전의 친척인류에게서는 볼 수 없었기에, 그동안 고고학자들은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현생인류라고 짐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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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등 현생인류 이전의 친척인류가 미적 감각을 지녔는지는 고고학계와 고인류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과거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예술 등의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 유력했다. 파이크 교수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처음 발견된 19세기부터 최근까지 네안데르탈인은 문명화되지 않은 야수로 묘사돼 왔다”며 “관념적인 행동은 물론이고 예술적인 표현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했다.
스페인 지브롤터 지역 동굴에서 발굴된 약 4만년 전 무늬다. 해시태그(#)를 닮은 이 그림은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새긴 것으로, 주변 석기 등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분석됐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발견된 43만∼54만 년 전 홍합 화석의 표면에 새겨진 ‘M’자 무늬. 호모에렉투스가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언스·네이처·PNAS 제공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로 이런 논란이 종식될 가능성이 높다. 파이크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연구”라며 “학계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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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페팃 영국 더럼대 고고학과 교수는 “스페인 내에서도 서로 700km 떨어진 동굴 세 곳에서 동일한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서유럽의 다른 동굴벽화 중에도 네안데르탈인의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예술이 4만∼5만 년 전에 갑자기 등장했는가, 이전부터 서서히 등장했는가는 고고인류학의 오랜 연구 주제였다”며 “이번에 후자를 지지하는 증거가 하나 더 추가됐다”고 말했다.
송경은 kyungeun@donga.com·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