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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눈보라와 함께 방어가 온다

입력 | 2018-01-22 03:00:00


일본에서는 새해 방어를 먹으며 복을 빌고 성취를 기원했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1955년 고도 성장기 이전 일본인들의 아침식사는 보리나 무, 잡곡이 섞여 있는 밥과 한 가지 야채요리, 된장국이 전부였다. 육류나 생선은 도시나 해안 근처에 살지 않고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냉장, 냉동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생선도 대부분 소금에 절이거나 마른 상태로 도시 내륙에 유통됐고 시골에서는 설날에나 한 번쯤 맛볼 수 있었다.

요즘도 일본인들이 새해맞이 풍습으로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중 하나가 국수를 먹는 것이다. 에도시대(1603∼1867년)부터 시작된 풍습이다. 우동 면보다 쉽게 끊어지는 국수는 그해 다가오는 불행이 쉽게 잘려나가 행복한 한 해가 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오세치요리’라 해서 온 식구가 며칠을 두고 먹는 도시락도 있다. 헤이안시대(794∼1185년)부터 시작된 풍습으로 3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을 미리 준비해 두고 끼니마다 몇 단에 걸친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는다. 불을 사용하지 않아 가족의 공간을 지배하는 불신의 화를 달래고 주방에서 매일 요리하는 부인들에게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새해 명절을 상징하는 생선은 태평양쪽의 연어와 대서양쪽의 방어 두 종류이다. 연어는 양식으로 흔해지면서 의미가 많이 사라졌지만 일본 서부지역에서 방어는 요즘도 중요한 새해 생선으로 취급된다. ‘출세어’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별명을 가졌다. 와카나, 하마치, 부리 등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고귀한 생선이다.

새해 선물로 흔히 사용되지만 혼인용 선물로도 많이 쓰인다. 딸을 둔 집에서 양가 혼인이 결정되면 최고 좋은 방어 두 마리를 구해 한 마리는 중매쟁이에게 보내 중매 비용을 대신하고 다른 한 마리는 신랑 집에 보냈다. 신랑 집에서는 받은 즉시 반을 잘라 신부 집에 다시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방어 같은 알찬 삶을 살아 양가 모두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출세어’의 의미를 알려준다.

사시미로 며칠 먹다가 소스를 발라 구이로, 무를 같이 넣어 조림 등 다양한 요리법으로, 시간에 따라 형태도 바뀌고 맛도 진하게 바뀌는 방어를 통해 인생사를 생각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

11월에서 12월 사이 가나자와(金澤) 도야마(富山)지역 해변에 북서풍이 불고 천둥과 눈보라가 치면 ‘부리오코시’라 부르는 방어 철이 시작된다. 여름철에 북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올라가 정어리, 고등어, 오징어를 먹고 살이 오른 방어가 이때가 되면 14∼15도의 수온을 찾아 다시 도야마 지역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10kg 정도로 가장 기름지고 맛이 오른 방어는 ‘히미’라 부르며 최상품이 된다. 같은 히미라 하더라도 여름철 근처 해안지역에 머물면서 몸집을 키워온 것은 기름기가 적고 맛이 떨어져 최상품이 되지 못한다.

나가노(長野)현 이나다니(伊那谷)는 초원이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새해 명절 때 소금에 절인 방어를 먹는다. 옛날에는 소금에 절인 히미를 5, 6마리씩 짐꾼들이 메고 1m가 넘게 쌓인 눈길을 뚫고 배달했다.

방어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양식을 한 어종이다.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돼 현재는 자연산과 양식이 6 대 4 비율로 소비되고 있으며, 일 년 내내 질 좋은 방어를 먹을 수 있다. 우리 이모같이 90세 이상 된 노인들은 방어를 먹을 때마다 어렵던 시절을 추억하고, 요즘은 세상이 좋아 매일 매일이 새해 명절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한다. 그들보다 늦게 태어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