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국제부장
남편과 아들의 갈등은 오래돼서 그 시작이 언제인지조차 흐릿하다. 아들은 남편을 향해 “나를 제대로 인정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느냐”며 눈을 치켜뜬다. 남편은 “가만두면 진짜 큰 사고 칠 녀석”이라며 눈을 부릅뜬다. 두 남자가 마주 앉아 대화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나를 가운데 놓고 서로 고함만 칠 뿐이다. 사이에 낀 나만 늘 괴롭고 힘들다. 아들은 “힘없는 엄마랑은 할 얘기가 없다”고 한다. 남편은 “당신 마음이 자꾸 약해지니까 그놈 버릇이 더 나빠진다”는 식으로 은근히 말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결할 힘도 내겐 부족하다. 때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그래도 이 집안의 평화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내 피와 땀, 모든 희로애락이 이 집 안에 녹아있다. 이 집은 내 삶, 그 자체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아들의 호전적인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적대감도 여전하다. “날 때리려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다. 진짜 싸움이라도 나면 죽도록 얻어맞으면서도 남편 다리나 팔 하나는 부러뜨릴 기세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넌 아직 멀었다’며 콧방귀를 뀐다. 그런데 남편도 점점 더 신경이 쓰이는 기색이다.
남의 집안싸움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쉽게 묻는다. “당신은 ‘집안 폭력’에 결사코 반대하는데, 남편이 아들을 때리겠다고 회초리를 들면 어떻게 할 거냐.” “최악의 상황이 와서 남편과 핏줄 중 한 명만 골라야 한다면 누굴 선택할 거냐.” 어떤 이는 “핏줄을 버릴 수 있겠느냐”고 하고, 어떤 이는 “남편 없이 살아갈 자신 있나”라고 한다.
아들을 버리지도 않고, 남편과 헤어지지도 않으려 한다. 어떻게 일군 집안인데, 결코 무너지게 할 수 없다. 더 크고 더 안전한, 이웃이 모두 부러워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등 뒤에 남편을 두고, 눈앞의 아들과 어려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 대화가 두 남자의 진실한 대화와 이 집안의 진정한 평화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밤이 깊어져도 잠이 오지 않는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