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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미세화석이 가르쳐준 ‘작은 인간’

입력 | 2018-01-02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138: 46: 40∼35.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탄생 시점을 간략히 나타내면 이렇다.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하고, 46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났으며 40억∼35억 년 전에 최초의 생명이 나타났다. 이 비율은 때론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특히 최초의 생명체 출현에 대해선 약 40억 년 전에서 35억 년 전 사이로 다양하게 추측된다. 가장 오래된 화석들을 통해서다.

우주와 지구 탄생의 시점에 대해선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그러나 최초의 생명체 시점을 밝히는 작업은 여전히 벅차다. 화석이 발견되어도 생명체 흔적의 진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는 호주 서쪽 부근에서 발견된 미(微)화석이 최초의 생명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알렸다. 약 35억 년 전의 미화석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너비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의 미화석은 8개가 모이면 인간의 머리카락 한 올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5가지 분류군 11개 미생물 표본의 형태학적 특징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몇몇은 현재 없는 세균이거나 고(古)세균이라고 불리는 미생물과 유사했다. 특히 산소 없이 태양에서 에너지를 얻는 광영양 세균, 메탄을 생산하는 고세균, 메탄을 소비하는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 등과 흡사했다. 생명의 역사에서 광영양은 광합성으로 확장된다. 메탄은 산소가 나타나기 전 지구의 초기 대기에서 온실효과를 만들었다. 고세균류는 먼 옛날 지구의 환경과 비슷한 높은 온도와 염도에서 생식이 가능하다.

화석이 발견된 곳은 판구조 활동으로 인한 심한 가열이나 매장 등이 없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따라서 생명체의 흔적을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연구진은 화석이 오래되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시간을 견뎠다. 1982년부터 화석을 모으기 시작했고 1993년에 미화석, 2002년 생명체의 흔적을 과학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미화석은 생명체처럼 보일 뿐 단지 이상한 광물의 흔적이라는 반론이 나왔다. 그래서 연구진은 화석에서 추출한 탄소동위원소 C13 대 C12의 비율을 그 주변 및 표준과 비교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화석의 추출본과 광영양 세균이나 고세균 등의 탄소동위원소 C13 대 C12의 비율이 비슷함을 밝혔다. 이로써 화석은 분명 생물학적, 대사적 특징을 띤 것으로 추정되었다. 탄소동위원소들은 모두 6개의 양성자를 갖고 있는데, 중성자의 개수가 달라짐에 따라 C 뒤에 붙는 숫자가 달라진다. 모든 생명체는 다양한 탄소동위원소를 갖고 있다. 7개의 탄소동위원소 중 C12가 가장 많아서 탄소동위원소 비율이나 반감기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이용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동안 연구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일 것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5억 년 전 미화석에서 발견된 생명체의 흔적이 사실이라면 5억 년 더 앞선 40억 년 전에 생명체가 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초의 생명인 세균은 산소가 없는 상황에서도, 뜨거운 태양의 에너지 가운데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남았다.

생명은 생명에서 탄생했다. 이 말은 순환오류처럼 보이지만 생명이 생명 아닌 것에서 만들어질 순 없다는 것이다. 생명은 단순 유기물에서 복합 유기물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한다. 세균은 단세포인데, 세포가 아닌 것에서 세포를 만들 수 없다. 가장 단순한 세포 하나 만드는 것조차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가 되는 건 과연 생명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다. 복제를 생명의 정의라고 간주한다면 100만 가지 이상인 단백질 덩어리도 생명이다. 하지만 단백질은 DNA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 성장이 생명이라면 수정(水晶) 역시 생명이다. 결국 생명의 정의엔 잣대가 없으며 그 개념은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40∼35: 0.0025. 최초의 생명체 출현과 최초의 인류 탄생을 비교하면 이와 같다. 인류는 약 25만 년 전에 출현했다. 그만큼 인간은 지구에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최초의 생명체가 언제 나타났는지를 알아보려는 이유는 인간이 더욱 겸허해지기 위해서다. 과학의 지향점은 바로 숙연해짐에 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