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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불탄 집엔 미납고지서… 79세 노병의 쓸쓸한 죽음

입력 | 2017-12-16 03:00:00

‘고엽제 피해’ 베트남전 참전 용사
생활고에 도시가스마저 끊고 생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버티다 화재
장례식장 화환-조문객 없이 썰렁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하 11.2도까지 떨어진 14일 새벽 영등포구의 한 낡은 주택에서 불이 났다. 슬래브 지붕에 흙벽으로 지어진 건물은 금세 허물어졌다. 불이 꺼진 뒤 소방관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33m² 남짓한 공간에는 다 쓴 부탄가스통과 휴지, 검정 비닐봉투가 가득했다. 건강보험료와 전기료 등의 미납 고지서도 여러 장 발견됐다.

처음에 소방관들은 빈집으로 생각했다. 무너진 흙벽을 헤치며 수색하던 소방관 앞에 집주인 김모 씨(79)가 쓰러져 있었다. 김 씨는 이미 숨져 있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1957년 육군에 입대해 28년간 복무했다. 전역 때 계급은 일등상사.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10월 베트남전에 파병됐다. 포병으로 2년간 목숨을 건 전투에 참가했다. 그때 후유증으로 1985년 전역 무렵에는 청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고엽제 피해로 거동마저 불편했다.

30년 가까이 군에서 생활한 중년 남성이 사회에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건물 주차관리를 하거나 필름현상소에서 보조업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2000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장을 잘라냈다. 투병이 길어지자 부인도 그의 곁을 떠났다. 페인트공으로 일하던 아들의 발길도 이때쯤 뜸해졌다.

김 씨는 매달 60만 원가량인 기초생활수급비와 국가유공자 보상금으로 생활했다. 월세 낼 돈이 모자라자 아예 도시가스를 끊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이용했다. 자연스럽게 라면이 주식이 됐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추울 때 난로 역할도 했다. 그렇게 수년간 겨울을 났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을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보고 있다.

김 씨 같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평균 연령은 74세.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측은 김 씨처럼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참전용사가 전체의 70%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숨진 김 씨는 늘 할머니 산소가 있는 전남 목포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김 씨의 아들(46)은 “아버지는 증조할머니 산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살고 싶어 했다. 언제쯤 이사할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묻곤 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나기 전날 김 씨는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아들에게 공중전화를 걸어 같은 내용을 되물었다고 한다.

홀로 빈소를 지키던 아들은 몇 년간 아버지에게 생활비조차 드리지 못한 걸 자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씨의 빈소에는 흔한 화환도 조문객도 없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