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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원재]한반도에서 원숭이가 사라진 이유

입력 | 2017-12-14 03:00:00


장원재 도쿄 특파원

지난달 말 일본 중부 아이치(愛知)현에 있는 교토대 영장류연구소를 취재할 때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일본 원숭이가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연구소의 이마이 히로(今井啓雄) 교수는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繩)에는 야생 원숭이가 안 산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원숭이 화석이 발견된다”며 근거를 댔다.

막연히 대만 등 남쪽 루트로 왔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 학계에선 30만∼50만 년 전 원숭이가 한반도를 거쳐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었다. 실제로 국내에선 충북 제천과 청주 등에서 원숭이 화석이 발견돼 과거 한반도에도 야생 원숭이가 서식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면 언제, 왜 한반도의 야생 원숭이가 멸종된 걸까.


흔히 야생 원숭이가 아열대 지역에만 산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본에선 홋카이도(北海道)를 제외한 혼슈(本州) 규슈(九州) 시코쿠(四國) 지역에 폭넓게 서식한다. 북쪽으로는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靑森)현 시모키타(下北) 반도에도 산다. 이 지역은 북위 41.3도인데 한반도로 치면 북-중 국경인 신의주와 백두산 사이다. 한반도가 야생 원숭이가 못 살 정도로 춥지는 않다는 뜻이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한반도의 원숭이 멸종을 두고 여러 가설이 있다고 했다. 가장 유력한 것은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대륙에서 건너와 한반도에 살던 원숭이가 빙하기 추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멸종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에 건너간 원숭이는 기온이 높은 남쪽에서 살아남았고, 추위가 꺾이자 동북 지방으로 서식지를 확대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한반도와 일본이 바다로 갈라진 다음이어서 한반도로 돌아갈 수 없었을 거란 얘기다.

대륙과 이어진 한반도에 살고 있던 호랑이 등 대형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혔을 거란 가설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 야생 원숭이는 살지만, 야생 호랑이는 안 산다. 이에 대해선 아프리카에는 사자, 인도에는 호랑이가 있지만 원숭이가 멸종되지 않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반도에선 가혹한 환경 때문에 원숭이가 멸종한 반면 일본에선 대륙과 단절된 상태에서 살아남아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시모키타의 야생 원숭이는 겨울에 눈 위에서 나무줄기 껍질을 뜯어 먹는다. 열매나 나뭇잎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택한 생존법이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서식하는 원숭이란 명예(?)를 얻었다.

이마이 교수는 최근 실험을 통해 일본 원숭이가 겨울을 나기 위해 쓴맛을 덜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걸 밝혀냈다. 나가노(長野)현의 원숭이는 겨울이 되면 온천에 들어가 추위를 견디고, 와카야마(和歌山)현의 원숭이는 지역에 자생하는 감귤류를 특히 잘 먹도록 진화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무척 가혹하다. 도망갈 곳은 없는데 주변에는 맹수들이 우글거린다. 최근 외교 안보 이슈를 두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벌이는 파워게임을 보면 한반도에 빙하기가 다시 오는 듯한 한기마저 들 정도다. 크게 보면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전선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물려받은 지정학적 위치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혜를 짜내 살아남고 진화해야 하는 것은 원숭이도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야생 원숭이처럼 되지 않도록 엄혹한 빙하기를 견딜 국가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