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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농업인의 날 만찬에의 초대

입력 | 2017-11-11 03:00:00


김용석 철학자

볼테르의 철학소설 ‘캉디드’의 주인공은 ‘이 세상은 최선의 상태로 창조되었다’라는 낙관주의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하지만 귀족의 딸에게 연심을 품는 바람에 성에서 쫓겨나 세계 곳곳을 방랑하면서 지진, 난파, 기아, 질병, 약탈, 전쟁 등 인간 세상의 온갖 재해와 불행을 경험합니다. 와중에 ‘이 세상은 최악의 상태로 창조되었다’라고 주장하는 비관주의자를 만나 논쟁하고 정신적 갈등을 겪습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캉디드는 콘스탄티노플 근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납니다. 노인은 손님에게 신선한 과일과 다양한 과즙으로 손수 만든 빙과와 질 좋은 모카커피를 대접합니다. 노인의 환대에 감복한 캉디드가 묻습니다. “당신은 아주 넓고 비옥한 땅을 갖고 계신가 봅니다.” 노인은 담담히 말합니다. “우리 땅은 20에이커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는 이 땅을 두 딸, 두 아들과 함께 경작하고 있지요. 농부의 일은 우리를 커다란 세 가지 악, 곧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지요.” 캉디드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든 자신의 농원을 경작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농업 철학을 바탕으로 ‘흙 토(土)’자가 겹치는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흙 토(土)’를 파자(破字)하면 십일(十一)이 됩니다.

세상 일이 그렇듯이 사람들은 농업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도시민들은 농업 하면 ‘자연’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농업의 본질은 바로 ‘문화’에 있습니다. 농업은 인류 문화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이는 문화(culture)의 서구어가 ‘경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을 변형해서 뭔가 이루어내는 인류 문화는 ‘땅을 경작하는’ 농업(agriculture)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을 잘 관찰하면 인류 문화가 발달하면서 획득한 다양한 특성의 원천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업은 도시민들과 무관할 것 같지만 사실 아주 밀접합니다. 현대인들이 도시 생활에 지쳤거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할 때 떠올리는 것이 ‘귀농’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잠재의식화되어 있는 겁니다.

볼테르와 동시대 사상가인 루소의 명언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칸트도 강조했듯이 ‘자연을 돌아보라!’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곧 자연을 삶을 성찰하는 화두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귀농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촌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농촌을 돌아보며 우리 일상을 성찰하는 화두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도시의 삶에 회의가 들 때,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농업의 ‘문화적 의미’를 돌아보며 도시의 삶을 성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려면 도시민들도 농촌과 농업에 일상적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요.

11월 11일을 가장 대중적 기념일로 삼는 것은 이른바 ‘빼빼로 데이’일 겁니다. 마른 몸이 다이어트의 대명사가 된 시대에 길쭉한 초콜릿 과자를 주고받는 재미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한편 농업은 진정한 다이어트는 마른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이라는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또한 요리라는 아주 창조적인 문화 행위도 발전시켜 왔습니다. 농업인의 날에 농사의 문화적 의미를 새기며, 저 콘스탄티노플의 농부처럼 신선한 농산물로 만든 요리로 친구들과 만찬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용석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