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훈 검사, 영장심사 1시간 전 변호인 사무실서 극단선택
그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믿고 싶지 않다”는 탄식이 나왔다. 국정원 소속 정치호 변호사(42·38기)에 이어 변 검사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 영장심사 1시간 앞두고 투신
사고 현장 목격자는 “와이셔츠와 파란색 넥타이 차림의 변 검사가 머리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떨어진 모습을 보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변 검사의 사인은 건물에서 떨어지며 생긴 외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다.
변 검사는 2013년 국정원에서 원장 법률보좌관으로 파견 근무를 했다. 변 검사는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이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50·21기), 파견검사였던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43·30기)와 함께 국정원이 ‘댓글 사건’에 대응해 꾸린 일명 ‘현안 태스크포스(TF)’ 활동을 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변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꾸미고 허위 서류를 갖다놓는 등 증거를 조작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국정원 직원들에게 재판에서 위증하도록 지시한 혐의(위증 교사)를 적용했다.
○ “국정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변 검사의 연수원 동기인 한 검사는 “변 검사와 최근 통화하면서 ‘잠깐만 고생하면 된다. 금방 지나간다’라고 달랬지만 억울해 했다. 스스로 견디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대변인을 통해 “비통한 심정이다.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뜻을 밝히고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총장과 대검 간부들은 이날 오후 11시경까지 빈소를 지켰다. 문 총장을 비롯해 일부 검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변 검사를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위아래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변 검사의 불행한 일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변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를 비롯해 함께 일했던 검사들 수백 명이 빈소를 찾았다. 7일 새벽 변 검사의 유족들은 빈소에 남아있던 검사들을 향해 “검찰총장이 무슨 정치인처럼 유세를 하러 왔느냐. 순시하듯이 돌면서 악수하고 여기가 무슨 잔칫집이라고 찾아와 술 먹는 자리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유족 측은 “검사들 조문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두고보자”며 오열했다. 변 검사의 모친과 아내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이 같이 말하자 빈소 내부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한 유족은 “남의 일이라고 술이 넘어가느냐”며 검사들을 향해 항의하기도 했다. 일부 검사들은 유족들의 항의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수사 서두르다 빚어진 참사”
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을 거친 공안통이다. 울산지검 공안부장이던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뒤 서거했을 때 사고 현장 확인과 부검을 지휘했다.
국정원 수사를 이끌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7)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 검사는 유력한 검사장 승진 후보였다. 하지만 8월 인사 때 국정원 파견 근무 경력이 문제가 돼 탈락했다고 한다. 변 검사는 서울고검으로 발령 난 뒤 크게 낙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팀 책임론이 제기됐다. 댓글 사건 수사 방해 의혹 수사는 앞서 구속된 한 국정원 간부의 폭로로 시작됐다. 당초 대검찰청 수뇌부는 보고를 받고 “수사 방해 의혹은 사건의 곁가지이므로 나중에 천천히 수사하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국정원 내부에서 말을 맞추고 증거를 없앨 수 있다”며 수사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수사팀이 변 검사 등 현직 검찰 간부들을 조사하면서 소환시간을 사전에 공개하고 민감한 피의사실을 언론에 누설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검찰 간부는 “변 검사로서는 평생 몸담았던 조직에서 ‘잡범’ 취급을 당하며 상실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수 ys@donga.com·허동준·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