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우리 역사에서 문집을 남긴 최초의 여성 문인은 허난설헌(1563∼1589)이다. 허난설헌은 자신의 글을 불태우라 유언했지만 동생 허균이 누이의 작품을 모아 1608년에 ‘난설헌집’을 간행하였다. 오늘날 전해지는 내용은 1692년 동래부(東萊府)에서 중간한 판본에 바탕을 둔다. ‘난설헌집’은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발표한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은 박화성(1903∼1988)이 1932년 동아일보에 청전 이상범의 삽화와 함께 연재한 ‘백화(白花)’다. 여성 작가 최초의 장편 연재이기도 하였다. 고려 말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연재 당시 이런 규모의 긴 작품을 쓰는 작가가 여성일 리 없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오랜 세월 여성 문학인들은 여류(女流)로 일컬어졌다.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여류는 있어도, 같은 맥락의 남류(男流)는 없었다. 여성은 전문성의 잣대로만 평가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여성 작가는 역사와 사회의식이 부족하다는 편견마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여성 작가들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형상화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