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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만 35년 공직생활… 장쩌민과 가깝지만 계파색 엷어

입력 | 2017-10-30 03:00:00

[中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열전]<3> 서열 7위 한정 상하이 서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려면 주요 지방의 서기 혹은 성장을 최소한 두 차례 거쳐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하지만 한정(韓正) 신임 상무위원은 상하이(上海)를 벗어난 적이 없다.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상하이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상하이의 국영 중소 창고관리업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상하이시 공청단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35년을 상하이에서 공직자로 지냈다.

한 서기의 상무위원 진입은 제2의 도시이자 경제 중심인 상하이의 수장을 맡은 업무 능력이 바탕이 됐지만 정치력과 운도 작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 서기는 2003년 49세에 상하이 시장으로 취임했는데, 50년 만에 나온 최연소 상하이 시장이었다. 9년간 시장을 맡아 ‘2인자’로 근무하는 동안 천량위(陳良宇) 시진핑(習近平) 위정성(兪正聲) 등 3명의 서기를 모셨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도 인연이 깊어 ‘상하이방’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계파 색채는 짙지 않다. 여러 계파에 걸쳐 있는 점은 상무위원에 오르는 데 밑거름이 됐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상하이 서기 중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한 인물은 비리로 낙마한 천량위밖에 없을 정도로 ‘상하이 서기’는 상무위원행 직행이 보장된 요직이다. 한 서기가 시장과 서기로 있는 동안 상하이는 2010년 세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2012년에는 중국 첫 자유무역지대를 출범시켰다. 2016년 디즈니랜드도 개장했다. 한 서기는 ‘국내총생산(GDP) 지상주의’에서 탈피해 민생과 환경도 강조하는 질적 성장을 추구한 점도 평가받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 “상하이를 세계의 금융 중심이자 첨단기술 혁신 중심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몇 번의 고비도 무난히 넘겼다. 2006년 9월 장쩌민계의 천량위 전 서기가 사회보장기금 횡령 사건으로 18년형을 선고받으며 낙마할 때 시장이었던 그도 동반 책임을 지고 물러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하이 서기 대리를 맡으며 오히려 승진했다.

2007년 3월 저장(浙江)성 서기였던 시 주석이 상하이 서기로 오면서 ‘상하이방 물갈이’ 차원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해 10월까지 다시 시장으로 재직했고 약 8개월간 시 주석과 함께 근무하는 동안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이처럼 위기를 넘긴 데는 장 전 주석이나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설도 없지 않았다. 한정이 상하이 구정부와 시정부 등에서 공청단 간부로도 근무해 상하이방과 공청단에 ‘이중 보험’을 들었던 효과를 봤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하이에서는 2014년 12월 31일 와이탄(外灘) 압사 사고로 36명이 사망하고 2010년 11월에는 빌딩 화재로 58명이 숨지는 등 대형 사건 사고도 잇따랐다. SCMP는 “웬만한 지방 정부 수장이라면 침몰할 수도 있는 사건들인데 한정은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어 생존했다”고 표현했다.

‘서열 7위 상무위원’인 한정은 장가오리(張高麗) 전 상무위원이 맡았던 상무 경제부총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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