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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자라니’ 주의보

입력 | 2017-10-24 03:00:00


과거 한반도는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였다. 몸집은 작아도 용맹한 한국 호랑이가 만주 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 못지않게 수가 많았다. 조선 영조 10년(1734년)에는 140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숨졌을 정도로 인명 피해도 컸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호식(虎食)이라고 했다. 1921년 경주에서 호랑이가 사살돼 국내 최상위 포식자가 공식적으로 멸종됐다. 호랑이 먹이였던 고라니와 멧돼지 등에게는 역으로 천국이 찾아왔다. 이들의 도심 출몰과 도로 횡단은 이제 별 뉴스가 아니다.

▷국내에선 로드 킬(road kill)의 최대 피해 동물이 고라니다. 2012∼2016년 고속도로 로드 킬로 고라니 1990마리가 희생됐다. 피해 2위인 멧돼지 수가 115마리인 점에 비춰보면 고라니가 얼마나 많이 번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라니는 밤에 차량 불빛을 보면 오히려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고 하니까 피해가 더 컸을 법하다. 로드 킬은 차량 피해와 2차 사고 가능성이 커 운전자들에겐 식은땀 나는 사고다.

▷도심 운전자들도 로드 킬의 두려움이 없지 않다. ‘자라니’들 때문이다. 자라니는 언제 차 앞으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고 해서 자전거와 고라니를 합친 신조어다. 특히 노인들이 모는 자전거는 교통신호를 제때 보지 못하는 일이 많아 인명사고가 잦다. 올해 1∼7월 서울에서 일어난 자전거 교통사고 사망자 17명 중 13명(76.5%)이 65세 이상이었다. 자라니도 그렇지만 ‘보라니(보행자+고라니)’라는 조어에도 운전자들의 불만이 배어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선 자동차와 자전거가 도로를 함께 이용할 때는 ‘공유’ 표지판을 세우고 서로 1.5m 이상 떨어져 달리도록 법으로 명시했다. 이들 나라에선 자전거 운전자도 좌·우회전 시 수신호를 빼먹지 않는다. 독일의 초등학생들은 5학년 때 자전거 면허시험을 치른다. 면허가 없으면 보호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초등학생들이 면허를 따게 돼 있다. 점점 자전거 사고가 늘어나는 우리도 면허시험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