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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부목 살이

입력 | 2017-10-20 03:00:00


부목 살이 ― 홍사성(1951∼ )

퇴직하면 산속 작은 암자에서 군불이나 지
피는 부목 살이가 꿈이었다 마당에 풀 뽑고
법당 거미줄도 걷어내며 구름처럼 한가하
게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요즘 나는 신사동 어디쯤에서 돼지꼬리에
매달린 파리 쫓는 일 하며 산다 청소하고
손님 오면 차도 끓여내는데 한 노골이 보더
니 굽실거리는 눈매가 제법이라 했다

떫은 맛 조금 가시기는 했으나 아직 덜 삭
았다는 뜻이어서 허리를 더 구부리기로 했
다 들개처럼 지나온 길 자꾸 뒤돌아보면 작
은 공덕이나마 허사가 될 것 같아서다

 
 
구직자는 직장을 꿈꾸고, 직장인은 퇴직을 꿈꾼다. 물론 요즘 같은 때에 직장이 있다는 것은 몹시 감사한 일이고 퇴직은 무섭다. 그렇지만 대안만 있다면 확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모든 직장인에게는 있다.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꿈꾼다. 꿈은 자유니까, 자유롭게 꾼다. 퇴직하면, 세계 일주를 해야지. 퇴직하면, 텃밭을 가꿔야지. 이런 꿈을 꾸다 보면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이 시에도 퇴직의 꿈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바라는 희망과는 조금 다르다. 시인의 꿈은 ‘부목’이 되는 것이다. 한자로는 ‘부목(負木)’, 절에서 땔감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통 퇴직의 꿈은 한껏 미화되기 마련인데 하필 주지 스님도 아니고 부목이 되고 싶은 사연은 무엇일까.

시인은 ‘공덕’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공덕은 가지지 않고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시인은 자신이 했던 일, 쌓았던 일, 애썼던 일을 아까워하지 않고 더 낮아지고 더 비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낮아지고 비우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신사동에 절간이 있을 리야 없지만, 절간이 있건 없건 이 시인은 공덕의 자세로 그곳에 거하고 있다.

시인은 혼자만의 꿈을 이야기했지만, 이 꿈에는 잃어버린 지혜가 담겨 있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가 전해주는 지혜를 보니 작가 조지프 마셜의 이런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지혜가 쌓일 때까지 오래 살아야 한다. 마침내 지혜를 얻으면 이것이 인생의 선물이며 혼자만 간직하거나 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