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출장의 외유성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공공기관 감사가 긴요하지 않은 해외 출장을 가는데도 누구 하나 이유를 제대로 묻지 않는 구조가 이상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따지고 들어가 보면 끊기 힘든 거미줄 모양이 하나 드러난다.
이 감사는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서울보증보험 출신이다. 그는 2014년 공석이 된 서울보증 사장 자리에 응모했다. 민간 보증 전문가라는 이점이 있었지만 친박(친박근혜) 유력인사가 밀었다는 김옥찬 당시 국민은행 부행장이 사장에 낙점됐다.
최종구는 이후 수출입은행장으로, 금융위원장으로 점프했다. 서울보증에서 시작해 기업은행 국민은행 수출입은행 등 짧은 기간 사방으로 퍼지는 인사를 두고 지난 정부 A 장관은 “정치적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낙하산 인사가 단지 자리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관과 기관을 거치며 줄줄이 연결된 이익의 카르텔이라는 말이다.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뜯어 먹는 상황에서 일개 감사의 해외 출장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결정할 리가 없다. ‘나도 좀 즐겨도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퍼지기 마련이다.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임직원 15명은 6월 21일부터 2박 3일 동안 선진 철도 서비스를 분석한다며 일본 후쿠오카로 출장을 떠났다. 신칸센을 타보고 철도기념관도 구경했다. ‘재능기부로 사회공헌활동을 하자, 책임멘토링제를 도입하자, 승무서비스를 개선하자’는 게 출장의 성과라고 한다. 뭐 이런가 싶지만 여기만이 아니다.
취업준비생들이 공공기관에 기대하는 것도 복지다. 한 기관장이 신입사원에게 회사에 바라는 점을 써 보라고 했다. ‘에어컨을 좀 빵빵하게 틀어 달라’는 건의서를 집어 던지고 싶었단다. “요즘 공공기관에 들어오는 직원들은 시험 보는 기술자들”이라는 기관장의 비판에는 직원에 대한 실망, 조직에 대한 자조가 가득했다. 직원들도 낙하산 기관장을 곧 떠날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니, 주인 없는 회사에서 노사가 내 탓 네 탓을 하며 이득만 챙기려는 꼴이다.
태생적으로 방만해질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의 고삐를 죄는 장치가 사내 감사와 정부의 경영평가제도다. 하지만 감사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정부 관료도 공공기관을 다그칠 입장이 못 된다. 청와대 반장식 일자리수석은 지난 정부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장을 맡아 성과주의를 주도했다. 지금 정규직을 늘리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낯이 뜨거울 것이다. 지난해 동서발전 사장으로 있으면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최근 성과연봉제를 자기 손으로 폐기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