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망우묘지공원의 독립운동가 유상규 묘(왼쪽)와 도산 안창호 묘비.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은 정도로, 안창호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 유상규. 그는 안창호의 비서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유상규는 3·1독립운동 참여 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 전신)를 중단하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안창호의 비서로 일했고 또 흥사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가 인재를 양성하고 민족의 역량을 키우라”는 안창호의 권고에 따라 서울로 돌아와 의사로서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경성의전 강사로 일하던 유상규는 1936년 7월 환자를 치료하다 단독(丹毒)에 감염되어 39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유상규의 장례식은 안창호가 직접 주관했다.
유상규는 안창호를 스승이자 아버지로 모셨고 안창호는 그를 특히 아꼈다. 안창호는 끝내 사랑스러운 제자 곁에 묻혔다. 망우묘지공원엔 근대기의 인물들이 많이 잠들어 있다. 지석영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조봉암 이중섭 이인성 박인환…. 모두들 우리를 숙연하게 하지만, 안창호와 유상규의 인연은 단연 감동적이다.
망우묘지공원의 역사와 가치를 추적하고 안창호의 유언을 발굴했던 작가 김영식 씨의 말. “도산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장을 거부했거나 유상규도 함께 데려가지 않았을까요. 도산이 떠난 자리, 홀로 남은 유상규의 묘비가 무척이나 쓸쓸해 보입니다.”
유상규의 묘 앞에 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안창호의 넋이 매일 도산공원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제자 곁을 떠도는 건 아닌지.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