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진 한반도, 벌레들의 습격 한반도,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 2010년 이후 벌레와 곤충 급증 살인진드기 환자 3년새 4.6배로… 충남-전북 아열대 병해충 골머리 전문가 “외래종 유입 철저히 막고 피해 분석으로 예방체계 세워야”
《 SF소설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1907∼1988)의 1959년 작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 ‘스타쉽트루퍼스’는 벌레와 인간 간의 처절한 전쟁을 다루고 있다. 상상 속의 영화적 설정이지만 2017년 현실 속 ‘벌레들의 습격’ 역시 만만치 않다. 이른 폭염과 한반도 온난화로 치명적인 병을 옮기는 진드기가 늘고 있다. 농촌에선 아열대 곤충이 농작물을 훼손하고 소방관들은 불끄기보다 벌집 제거에 더 바쁘다. 한반도 기온이 올라가면서 벌레, 곤충이 가져오는 재해는 더욱 급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우리를 습격하는 벌레와 곤충, 얼마나 많을까. 》
#상황 2: 4일 B 씨(61·강원 평창군)는 산행 중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을 일으켰고 동료들이 병원으로 급히 옮겨 목숨을 건졌다.
#상황 3: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짓던 50대 C 씨는 옥수수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잎사귀가 갈기갈기 찢겨 1년 농사를 망칠 정도였다.
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무엇일까? A 씨는 ‘작은소참진드기’에게 물렸다. B 씨는 말벌에 허벅지를 쏘였다. C 씨의 농작물을 망친 주범은 ‘멸강나방’ 애벌레다.
○ 2010년부터 급증한 벌레와 곤충
질병관리본부 감염질환 현황을 분석해 보면 ‘살인진드기’라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가 옮기는 SFTS 환자는 3년 새 4.6배로 증가했다. 올해도 벌써 48명의 환자(7월 11일 기준)가 발생했고, 이 중 13명이 사망했다. 회사원 박정수 씨(43)는 “자녀들이 ‘캠핑을 가자’고 조르지만 살인진드기가 걱정돼 도심 놀이공원에 데려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면서 2010년을 기점으로 벌레, 곤충이 급증한 것 같다”고 말한다.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지난해는 기상청 관측 이래 역대 최고(13.6도)를 기록했다. 국내 폭염은 주로 6∼8월에 집중됐지만 최근 3년간 폭염특보 최초 발표일은 5월 19∼25일로 당겨졌다. 기상청 김성묵 전문예보분석관은 “향후 3월 혹은 10월이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아열대기후 조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통합적 벌레·곤충 방어체계 구축해야
산과 농촌에는 아열대성 벌레가 극성이다. 지난달부터 충남, 전북 등 곳곳에서 멸강나방 애벌레가 벼, 옥수수 등을 먹어치우고 있다.
소방관들은 요즘 화재보다 ‘벌’ 때문에 바쁘다. 더워진 도심 속에서 벌들의 생육 환경이 좋아지면서 주택가에 벌집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아열대성 외래종 ‘등검은말벌’이 활개치고 있다. 국민안전처 소방119구조과 강복식 주임은 “벌집 신고가 평년보다 일찍 시작돼 출동하느라 정신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벌레, 곤충 피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벌레는 무척추, 변온동물로 따듯하고 습할수록 번식력이 강해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2050년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4도 상승하고, 폭염 일수는 5.8일 더 많아진다.
국립생물자원관 김태우 연구사는 “어떤 벌레가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분석하고, 주요 출몰 지역의 출몰 시기를 예측하는 등 벌레 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가 아열대 벌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 만큼 전염병을 옮기거나 국내 생태계를 파괴할 외래종의 국내 유입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질병관리본부 조신형 매개체분석과장은 “지자체별로 해를 주는 지역 내 벌레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노형일 재해대응과 팀장은 “농림, 환경, 산림, 질병 등 분야별로 나눠진 벌레 대처를 통합해 대응하는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