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광화문에서/이성호]국민안전처 1000일

입력 | 2017-06-12 03:00:00


이성호 사회부 차장

7일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평소보다 바빴다. 약간 과장하면 호떡집에 불난 듯했다. 이날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통해 긴급재난 문자메시지가 13차례나 발송됐다. 올 들어 가장 많았다. 오전 9시 22분 59초 전북 남원시를 시작으로 오후 4시 57분 22초 경기 평택시까지 전국 36개 지역에 발송됐다. 인구만 놓고 보면 약 800만 명이 직간접적으로 재난정보를 확인했다.

이날 긴급재난문자는 모두 조류인플루엔자(AI) 관련이다. “AI가 긴급재난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서울 같은 대도시 주민이야 덜 느끼지만 지금 닭과 오리를 많이 키우는 농촌은 비상이다. 겨울에나 발생하던 AI, 그것도 고병원성 AI가 여기저기 도깨비불처럼 발생해서다. 혈통 보존을 위해 31년간 대를 이어 키워온 재래닭 572마리가 죽어나간 제주도 상황은 그야말로 재난이다.

요즘 긴급재난문자 발송은 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무더위가 닥치고 바닷물 수위가 오르고 정전이 발생해도 긴급을 알리는 문자가 휴대전화에 뜬다. 문자 내용도 ‘경동시장 내 야채가게 화재 발생, 우회도로 이용’(5월 23일) ‘포천 장날 토종닭을 구입한 분은 신고하세요’(6일) 같은 식이다. 지역과 원인 대책을 콕 찍어 알려준다. 다른 지역에서 이런 문자를 받으면 금방 지우겠지만 해당 지역에선 많은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고 정보를 찾고 지인들에게 알린다. 긴급재난문자 발송의 긍정적 효과다.

별것 아닌 상황에 성급하게 긴급재난문자를 보내 사람 놀라게 한다는 말도 나온다. 4일 서울 관악구 삼성산 산불이 대표적이다. 일요일 오후인 데다 이틀 전 수락산에서 제법 큰불이 있었기에 놀란 사람이 많았다. 당시 산불 피해는 약 150m². 일부 누리꾼은 국민안전처의 ‘면피성 문자 쏘기’ 의혹을 제기했다. 강릉·삼척 산불 당시 긴급재난문자를 제때 보내지 않아 비난받자 이제 연기만 보여도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상권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은 강릉·삼척 산불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턱대고 보낸다’는 지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산불 발생 때 명확한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이 없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그 대신 이제는 안전처 차원에서 실시간 영상을 보고 민가가 가깝거나 등산객이 많은 곳일 때 문자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정확성을 높이겠지만 초기에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긴급재난문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빠르면 다음 달 안전처가 해체된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2014년 11월 19일 출범 후 1000일 가깝게 이어온 국민안전처 간판은 얼마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우리 사회에 안전의 가치를 다시 새겼다는 점에서 안전처 역할은 충분했다고 본다. 삼성산 산불 문자 발송에 대해 온라인에서 ‘이런 게 안전처의 역할’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많았던 게 단적인 사례다.

안전처 역할은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가 맡는다. 겉모습을 보면 안전처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청와대의 재난안전비서관 자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재난 대책을 강화하자”며 장관이 나서도 힘 있는 부처들이 꿈쩍하지 않는 모습을 봤기에 차관급으로 격하된 컨트롤타워는 영 미덥지 않다. 대통령은 청와대가 모든 재난에 직접 대응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불안하다. 대통령이 모든 내용을 알 수도, 대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재난은 발생 후보다 발생 전이 훨씬 중요하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