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제’ 개정판 출간 정진성 서울대 교수
《‘일본 해군 특경대(特警隊)가 위안부 조달 책임을 맡고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했으며 강제적으로 신체검사를 받게 한 후 위안소에 넣었다. 여성이 위안소에서 탈출할 경우 가족을 체포해 학대했으며 심지어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
2007년 4월 공개된 네덜란드 정보부대 문서 ‘일본 해군 점령기 동안 네덜란드령 동인도 서보르네오에서 발생한 강제 성매매에 대한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권위자인 하야시 히로부미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이 문서는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뒤집을 수 있는 명백한 자료”라고 평했다.》
정진성 서울대 교수는 2004년부터 4년간 유엔 인권소위원회 정위원을 지냈다. 학자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그는 “일본과의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역사적 사실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5일 연구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일본 정부의 ‘증거는 없고 증언만 있다’는 입장을 뒤엎을 만한 자료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발굴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료는 무궁무진합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입증하는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데에 힘써야 합니다.”
“1년 넘게 준비한 프로젝트였는데 충분한 설명 없이 취소 통보가 왔습니다. 12·28 한일 합의 이후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바뀐 거죠. 외교 관계를 넘어서 위안부 문제에 관해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재협상’ 공약에 대해 “진작 그랬어야 했다”고 잘라 말했다. “안보·경제·환경 등 많은 분야에 걸쳐 일본이 협력해야 할 이웃 국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를 잘 풀어가면서도 역사적 진실은 철저히 입증하는 투 트랙(two track)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 교수는 1984년 대학원생 때 일제강점기의 사회 변동에 관한 논문을 쓰며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게 됐다. 그는 1992년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알려 유엔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사회 반응은 싸늘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우리 민족의 창피한 역사를 국제무대에서 드러내는 게 못마땅하다는 반응이었어요. 심지어 몇몇 여성 지식인은 ‘화대 받는 것도 아니고 배상 요구하지 마라’는 막말도 했어요.”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