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먼저 ‘수도’에 ‘물’을 더해 소리 내 보자. [수돈물]이라 한다. 발음에서 ‘수도’와 ‘물’에는 없었던 ‘ㄴ’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이 ‘ㄴ’ 때문에 수돗물에 ‘ㅅ’을 쓰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수도’와 ‘물’을 더할 때 사이에 ‘ㅅ’이 있어서 우리가 ‘ㄴ’을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있었던 ‘ㅅ’은 왜 ‘ㄴ’이 된 것일까.
우리는 모두 두 개의 공깃길을 사용해 말을 한다. 하나는 입을 통해 소리 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 소리 내는 길이다. ‘수도+ㅅ+물’을 발음한다고 해보자. ‘ㅅ’은 입소리이고 뒤이은 ‘ㅁ’은 코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들을 각각 소리 내려면 짧은 시간에 공깃길을 얼른 바꾸어야 하지만 입은 그런 복잡한 일을 하지 않는다. 콧소리인 ‘ㅁ’을 발음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코로 가는 통로를 열어버린다. 그러면 ‘ㅅ’은 같은 위치의 콧소리인 ‘ㄴ’으로 바뀐다. 우리 모두는 이런 원리로 소리를 낸다. 모두가, 정확히.
―윗마을, 아랫마을, 깻묵, 잇몸, 빗물, 냇물, 노랫말, 존댓말, 혼잣말…
―나뭇잎, 댓잎, 깻잎, 예삿일, 훗일…
그렇다면 ‘수도+세’에는 왜 ‘ㅅ’이 없는가. 이 말의 발음은 [수돋쎄/수도쎄]다. ‘세’의 ‘ㅅ’이 된소리가 되는 것을 보면 ‘ㅅ’을 넣어야 하는 위치가 맞다. 하지만 현행 맞춤법은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에는 ‘ㅅ’을 적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에 ‘ㅅ’을 적는다면 ‘ㅅ’ 표기가 훨씬 더 복잡해진다. 병원의 예만을 들어 보자.
―내과, 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치과, 소아과, 마취과…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고유어를 포함한 말에도 한자어에서처럼 ‘ㅅ’ 표기를 안 할 수는 없느냐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정책과 관련된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기억할 것이 있다. ‘ㅅ’ 표기는 우리의 말소리 때문이지, ‘ㅅ’을 적어야 한다는 맞춤법 때문은 아니었다. ‘ㅅ’ 표기를 하지 않는 원칙을 둔다 할지라도 말소리와 새로운 표기 사이에서 분명 혼동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만큼이나.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