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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데이터를 숭배한 인간, 신을 넘보다

입력 | 2017-05-20 03:00:00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유발 하라리 지음·김명주 옮김/630쪽·2만2000원·김영사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유채화 ‘죽음의 승리’(1562년 작). 유발 하라리는 “죽음을 기술의 힘으로 극복하려 하는 인정사정없는 전쟁이 다가오는 시대를 움직이는 주력 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영사 제공

저자는 전작 ‘사피엔스’(2015년)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게 됐는지”에 대해 설파하며 지난 7만 년의 기간을 ‘인류의 시대’라 규정했다. 나는 인류의 일원이지만 인류가 지구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태도에 대해 반대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종교 관련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며 종교관 역시 없음을 밝힌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첫 장(章)에서 “이제 인류가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게 됐다”고 전제했다. 그 근거로 2010년에 기아 또는 영양실조로 죽은 지구인이 100만 명 정도인 반면에 비만으로 죽은 이가 300만 명이라는 등의 데이터를 제시한다. 어린이의 3분의 1이 성인이 되기 전에 질병으로 사망했던 상황을 100여 년 만에 극복했으며,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경제 자원이 된 까닭에 전쟁의 채산성이 떨어졌다고 썼다. 그리고 “짐승 수준의 생존 투쟁에서 벗어난 인류가 다음 할 일은 스스로를 신(호모 데우스)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기술력으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미래의 경제 사회 정치를 결정하리라는 것,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하라”고 주창한 인본주의 가치관이 지배해온 세계가 몇십 년 안에 무너지리라는 것, 인본주의의 빈자리를 알고리즘이 좌우하는 ‘데이터 교(敎)’가 메우리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

까마득한 상공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듯 하는 글이 여러 대목에서 반감을 일으킨다.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가 비만에 의한 희생자 수보다 적어졌으므로 이제 기아는 더 이상 인류의 큰 고민이 아니다”라는 말을 당장 굶어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이런 해석은 비만의 원인이 과식뿐 아니라 영양 관련 지식, 개인별 또는 사회별 식생활 조절능력의 불균형에도 있음을 외면한다.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든 비난받지 않고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놓은 점도 눈에 걸린다. 저자는 초반부에 “내 예측은 인류가 21세기에 무엇을 추구할지에 대한 것이지, 실제로 그런 시도에서 성공할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결말부에 다시 “내가 제시한 가능성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게 실현되지 않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고 했다.

지은이는 명민하고 매력적인 선지자의 풍모를 지녔다. “가치는 더 이상 무언가를 경험하는 데 있지 않다. 그 경험을 자유롭게 흐르는 데이터로 전환해 전 지구적으로 풍성하게 공유하는 데 있다. 이건 추세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빈틈없는 현상 분석에 반박할 여지는 없다. 그렇다고 찬탄하며 추종하고 싶진 않다.

마지막 장을 덮으니 기억에 남는 문장은 하나다. “세상 돌아가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 도움도 안 되는, 세상과 무관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렵다”던 저자 친구의 말. ‘은하철도 999’나 주말에 다시 찾아 봐야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