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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선/최현자]노후의료비 준비로 은퇴파산 피해야

입력 | 2017-03-31 03:00:00


최현자 서울대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장

이제는 은퇴 준비의 필요성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들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정작 돌아오는 답은 신통치가 않다.

혹시 4가지 장수 위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전장수(無錢長壽), 유병장수(有病長壽), 무업장수(無業長壽), 독거장수(獨居長壽)가 그것이다. 오래 사는 건 축복이지만 돈 없고, 병들고, 할 일 없이, 혼자 오래 사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라는 말이다.

최근 필자가 수행했던 행복수명 연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요소를 100으로 했을 때 건강이 35%나 차지한다고 답할 정도로 은퇴 후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건강을 위해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건강검진을 받는 등 예방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작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치료를 받을 돈이 있느냐다.

몇 해 전 국내의 한 공공기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전 생애 의료비 추정액에 따르면 남자는 약 1억177만 원, 여자는 약 1억2332만 원이 들고, 이 비용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후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수치는 5년 전과 비교해 1.4배 정도로 증가했다고 하니 같은 속도로 늘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은 어림잡아 1억5000만 원 내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건강보험이 있어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보조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사회보험들의 재정추계 자료를 보면 머지않아 건강보험이 적자로 돌아서고, 10년 후에는 그 규모가 2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 8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인데 이들이 전체 진료비의 약 40%를 차지한다고 하니 나날이 늘어나는 노인들의 의료비를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에서 감당하기에는 당연히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해결책을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보지만 묘수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 부담을 늘리거나 보험수급자의 혜택을 줄이는 수 말고 다른 방도가 있을까.

우리는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냥 오래 사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가족 및 이웃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활동들을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노후 생활비에 더해 노후 의료비 준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료비를 감당할 만한 소득이나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채 은퇴를 맞는다면 ‘은퇴파산’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비가 올지 모르는 내일에 대비해 우산 하나씩은 챙겨두자.
 
최현자 서울대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