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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 그림 있는 담배 주세요”

입력 | 2017-03-29 03:00:00

[담배 이제는 OUT!]흡연자들 덜 혐오스러운 ‘경고’ 골라 구매
복지부 “4월 설문조사… 효과 낮은 그림 교체”




“저걸로 주세요.”

직장인 박모 씨(42)는 요즘 담배를 사러 갈 때면 편의점 담배 진열대를 한참 훑어본 뒤 이렇게 말한다. 덜 혐오스러운 경고그림이 붙은 담배를 고르기 위해서다. 박 씨가 가장 ‘선호’하는 경고그림은 아이 얼굴이 그려진 담배(사진)다. 박 씨는 “웬만하면 담뱃갑을 주머니나 가방에서 꺼내지 않는데 혹시라도 아이가 볼까 봐 덜 혐오스러운 경고그림 담배를 산다”고 말했다.

담뱃갑 경고그림 부착이 의무화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흡연자 사이에서 특정 경고그림이 붙은 담배를 골라 피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개월 전까지만 해도 경고그림이 없는 담배를 쉽게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중에서 이런 담배를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생긴 변화다.

담뱃갑 경고그림은 총 10가지다. 폐암, 후두암, 구강암, 간접흡연, 피부 노화 등 흡연으로 생길 수 있는 질환과 폐해에 따라 경고그림과 경고문구가 각기 다르다. 이 중 흡연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고그림은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표현한 것으로, 눈이 충혈된 아이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눈에 봐도 목구멍이 뚫린 사진(후두암), 수술 장면(폐암, 심장질환) 등 다른 경고그림보다 덜 혐오스럽다.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 점주 김모 씨(56)는 “진열장에 이 담배가 없으면 찾아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어 피곤할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 다음으로 흡연자가 많이 찾는 경고그림은 가족사진 중 아빠 얼굴이 타버린 그림(조기 사망)과 남성 하반신 앞에 담배가 구부러진 그림(성기능 장애)이다. 후자는 여성이 체감하기 힘든 내용인 데다 그림 자체도 크게 혐오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성 차별적 요소’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보건복지부는 일부 경고그림 담배만 골라 피우는 흡연자가 늘면 자칫 경고그림의 도입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이런 현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장영진 복지부 건강증진과 사무관은 “다음 달부터 흡연자를 대상으로 경고그림 도입 전후 효과를 비교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르면 올해 안에 10가지 경고그림별 효과를 평가할 계획”이라며 “이 결과에 따라 금연 유인 효과가 낮은 경고그림은 교체하거나 퇴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출 그림이 정해지면 흡연자에게 강력한 효과를 줄 만한 새 경고그림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담배 제조회사 측은 정부가 정해준 기준에 맞춰 10가지 경고그림을 똑같은 비율로 제작하고 있을 뿐 특정 그림이 들어간 담배를 더 생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