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김홍빈, 중증 장애인 3명과 로체 원정대 발대식
손가락이 없으면 로프를 잡을 수 없다. 빙벽에 피켈(등반용 얼음 장비)을 힘껏 찍을 수도 없다. 손가락을 잃는 것은 전문 산악인에게 ‘산을 그만 오르라’는 사형선고다. 히말라야 등정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열 손가락이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53)은 이런 반응에 시큰둥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손이 없으면 발로 하지요, 뭐. 하체 근육을 키우면 돼요.”
김 대장이 세계 4위의 고봉인 히말라야 로체(8516m)에 오르기 위해 24일 네팔로 떠난다. 2015년 도전했다가 네팔 대지진으로 발길을 돌린 바 있으니 재도전인 셈. 16일 오후 광주시청에서 로체 원정대 발대식이 열렸다. 발대식에 앞서 14일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2009년 1월 히말라야 14좌 중 다섯 번째로 등정에 성공한 다울라기리(8167m) 정상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는 김 대장. 동아일보DB
김홍빈 대장(가운데)의 광주 사무실에서 정영웅(왼쪽) 이진기 등 로체 원정대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광주=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1991년 북미 알래스카 매킨리(6194m)를 등정하다 정신을 잃었어요. 잘 먹지도 못하고 무리하게 등반한 게 원인이었죠. 탈진, 피로, 고소증이 겹쳐 조난됐다 16시간 만에 구조됐지요.”
꿈에 나타난 어머니는 “너는 오래 산다더라. 걱정하지 마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일곱 번의 수술 끝에 손목은 살렸지만 끝내 손가락은 까맣게 죽어 버렸다. 이후 한동안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처음으로 혼자 팬티를 입고 양말을 신었을 때, 혼자 문을 열고 소변을 해결했을 때 펑펑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1997년 등반을 재개했다. 목표는 7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오르는 것이었다. 유럽 엘브루스(5642m)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아시아 에베레스트,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 오세아니아 카르스턴스(4884m), 남극 빈슨매시프(4897m)를 12년 만에 완등했다.
김 대장은 5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에 도전할 계획이다. 8월에는 장애인들과 함께 백두산을 오른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가능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도전 아닐까요?”
그의 삶은 지치지 않는 도전으로 요약된다. 그의 도전은 어쩌면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광주=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