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창 뇌연구포럼 대표 서울대 의대 교수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부검에 대한 거부감이 커 뇌 기증에 동의하는 환자나 유가족은 아직 드물다. 그래도 필자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서울대병원에서는 뇌 기증이 예전에는 1년에 2, 3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3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왜 뇌은행을 만들고, 인간의 뇌를 직접 연구해야 하는 걸까. 동물의 뇌만으로 충분한 건 아닐까. 동물의 뇌는 인간의 뇌와 구조와 기능이 다를 뿐 아니라, 뇌질환의 종류나 증상도 차이가 크다. 어떤 이는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양성자단층촬영(PET)과 같은 첨단 뇌검사 장비가 있는데 왜 뇌조직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이는 오해다. 아직도 뇌 전체를 신경병리학적인 방법으로 검사하지 않고서는 진단 자체가 불가능한 뇌질환이 많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브라질, 일본 등 여러 나라가 인체 뇌를 기반으로 하는 뇌과학 연구에서 많이 앞서 있다. 우리 실정은 아직 초라하다. 동물 실험에서 훌륭한 기초 연구를 수행한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해외 학술대회에 나가 “앞으로 인체에서도 확인해 볼 예정”이라는 말만 10년 넘게 해 왔다.
뇌은행이 성공하려면 안정적인 장기 투자와 인력 양성 등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부검과 관련해 아직 논란이 많은 법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법 문제가 해결되면 문화적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홍보와 인식 전환을 통해 뇌 기증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인체 뇌 연구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신경과학 선진국의 꿈을 포기한 나라다.
왕규창 뇌연구포럼 대표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