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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원 주심 ‘송곳질문’이 결정문 밑그림

입력 | 2017-03-13 03:00:00

[대통령 파면 이후]재단설립 경위 등 철저히 따져물어
초안 주도적 작성… 평의 통해 완성… 누구나 읽기쉬운 간결한 단문 화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의 결정문은 사실상 주심 강일원 재판관(58·사진)의 작품이었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을 상대로 여러 차례 ‘송곳 질문’을 해 화제가 됐던 강 재판관이 20차례 심리에서 했던 발언들이 바로 결정문 그 자체였다. 12일 헌재에 따르면 강 재판관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결정문 초안이 재판관 8명 전원이 참석한 평의를 거쳐 최종본으로 완성됐다. 강 재판관이 평소 쓰는 말투처럼 결정문은 어려운 법률 용어가 거의 없는 쉬운 단문으로 구성됐다.

강 재판관은 지난달 9일 열린 12차 변론기일에서 박 전 대통령 측에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 대해 “대통령 주장처럼 재단이 좋은 취지였다면 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이 증거를 없애고 위증을 지시해 구속됐느냐”고 물었다. 박 대통령 측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미르와 K스포츠 설립을 청와대가 지원한 사실을 비밀로 하고 이후 관련 증거를 없애고 위증을 지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문장으로 반영됐다.

강 재판관은 같은 날 “‘정윤회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이라 했는데 어떻게 그 이후에도 많은 청와대 자료가 나갔느냐”고 물었다. 대통령 측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는 결정문에 ‘피청구인은 취임 후 2년이 넘어서까지 최서원(최순실)에게 연설문 등 문건을 전달하고 그 의견을 들은 사실이 인정된다’로 쓰였다.

많은 후배 법관들은 강 재판관을 “인품, 재판 능력, 판단력 등 모든 면에서 최고”라고 평한다. 강 재판관은 1985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임용된 뒤 3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하는 동안 후배 법관들에게 인상을 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2012년 여야 합의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될 때까지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강 재판관은 서울에서 3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부친의 사업이 기울어 중학교 때 살던 집에서 쫓겨나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았고, 쌀이 떨어져 끼니를 거른 적도 많았다.

탄핵반대 측 일부의 신변 위협 때문에 강 재판관 자택 인근엔 경찰이 배치됐다. 강 재판관은 선고를 마친 뒤 1주일 휴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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